이수단 LEE Su-dan의 사본

이수단 LEE Su-dan

이수단

LEE Su-dan

조선 평안남도에서 태어남, 1940년 19세에 5년간 동원됨, 중국 동닝에 남겨짐

나는 돈도 주고, 옷도 주고 만주에서

허드렛 일을 하는 줄만 알았어요.

3년 계약으로 선금 480원을 받아

의붓 어머니에게 주고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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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데려간 것은 일본군의 앞잡이였어요. 군복을 입고 칼을 차고 있었어요. 나는 돈도 주고, 옷도 주고 만주에서 허드렛 일을 하는 줄만 알았어요. 3년 계약으로 선금 480원을 받아 의붓 어머니에게 주고 왔어요. 

만주에 도착해 보니 공장이 아니라 유곽 같은 곳이었어요. 주인은 일본인 부부였고, 나를 히도미ひどみ라고 불렀어요. 

하루에 8-10명의 군인이 왔어요. 낮에는 일반 군인이 왔고 밤에는 장교들이 와서 자고 갔어요. 군인들이 주인에게 입장표를 사면 콘돔도 같이 받아 왔어요.

일본 군부대에서 군의관이 성병 검사를 했는데, 그만 큰병(성병)에 걸렸어요. 동닝东宁의 병원에 가서 10일 동안 치료를 받았어요. 퇴원해서 돌아왔는데, 내 방문 앞에 출입금지 표시를 해 두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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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에 들어간 돈도 내 몫이고, 일 못 한 돈도 빚으로 남았어요.

전쟁이 끝나고 해방이 됐지만, 고향에 마음을 붙이지 못할 것 같아 돌아가지 않았어요. 이 근처에서 중국인 남편을 만나 살았어요.

폭력이 심해 마을에서도 이혼하라고 할 정도였어요. 도저히 살 수가 없어 나중에는 혼자 경로원에 들어왔어요.

* 자신의 아이를 낳지 못한 할머니는 나이가 들수록 아이에 대한 집착이 커졌다. 정신분열증이 생기면서 아이 사진을 방에 붙여 두었다. 그리고 경로원장이 선물한 인형을 아기처럼 생각하며 얘기를 나누고, 잘 때도 안고 잤다. 

다이이치살롱 위안소의 사본

일본군 최초의 위안소 다이이치살롱(大一沙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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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상하이 둥바오싱(東寶興)로 125롱(弄)에 위치한 일본군 최초의 위안소인 '다이이치살롱(大一沙龍)'. 이 곳은 1932년 1월28일 일본군이 중국 상하이를 무장 침범한 이른바 `1.28사변' 두 달 전 상하이 홍코우취(虹口)에 음식점으로 운영하던 곳을 개조하여 군이 직접 운영한 군위안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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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일본 조계지였던 홍코우취를 중심으로 일본군은 상하이뿐만 아니라 그들의 군대가 이동하는 곳마다 기하급수적으로 위안소를 설치하였는데, 지금은 급격하게 진행된 도시화로 흔적조차 찾을 수 없게 되었다. 이런 현실에 비해 최초 위안소 다이이치 살롱의 건물은 비교적 잘 보존된 상태였다.
이미 80년도 더 지난 건물이기에 내부는 상당히 낡고 초라했다. 빛도 잘 들지 않을뿐더러 나무로 된 복도와 계단이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요란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건물 한 채에 무려 40여 가구가 사는 이른바 쪽방촌으로 전락한 이 곳에는 이제 더 이상 80여년 전을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단지 전해들은 이야기를 다시금 전해줄 뿐이다. 이제 이곳은 사람이 아닌 당시의 상황을 고스란히 목도했던 건물들이 과거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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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관정문 입구에 일본황실을 상징하는 국화문양과, 방안 창틀에 새겨진 후지산 문양이 과거 일본군이 주둔하였음을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다닥다닥 붙어있는 좁은 방들은 중일전쟁의 승리에 취한 일본군들이 술에 취해 휘청거리며 성적 욕구를 ‘배설’했던 곳이었음을 증명이나 하듯이 붉은 핏빛을 띠고 있다. 80년전 십대 소녀의 몸으로 낯설고 물설은 이곳에서 느꼈을 그녀들의 공포를 생각하니 가슴 한 켠이 한없이 먹먹해온다. 침략 야욕에 광분하여 전쟁을 일으킨 후 한반도를 병참 기지화 하고 젊은 남성들은 강제 징용을, 젊은 여성들은 위안부로 징발했던 우리역사의 아픈 상처는 이렇게 이국 땅 상하이에까지도 고스란히 남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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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가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에 등재 되어야 하는 이유

일본군 위안부가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에 등재 되어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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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가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에 등재 되어야 하는 이유

민주상

박지은

안녕하세요. 저는 학교 선생님을 통하여 이 공모전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그로 인해서 ‘일본군 위안부’라는 역사적 사실과 수많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님들의 이야기와 말씀들을 더욱 많은 사람들이 알아주는 것뿐만이 아니라, 세계 기록 유산에 등재 하는 것에 큰 관심과 동의하는 마음을 갖게 되어서 이렇게 글을 써 내려가게 된 대한민국의 고등학생입니다.

우선 일본군 ‘위안부’는 일본이 식민지 및 점령지의 여성들에게 저지른 성범죄로써, 일본군들의 성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 납치, 매매 등을 통해 성적 행위를 강제적으로 당한 여성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위안부는 영원히 잊히지 않고, 영원히 잊으려 하지도 않을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이자 ‘위안부’에 속하여 그 고통을 하나하나 직접 다 겪었던 분들께는 너무나도 치욕스럽고 평생 씻기지 않을 아픔입니다. 그런데 일본군 ‘위안부’와 같은 일은 당시 여성들만이 겪었던 고통과 아픔이 아니라, 현재까지도 수많은 나라에서 수많은 여성들이 끊임없이 겪어오고 고통받는 일입니다.

 

기사, 윤미향과 정의연 스캔들 ②: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본질과 정대협의 노선
기사, 윤미향과 정의연 스캔들 ②: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본질과 정대협의 노선

지금까지도 우리는 계속해서 여성을 상대로 한 성범죄를 접하고 있고, 여성을 향한 성범죄에 피해 받은 여성들이 얼마나 무너지고 얼마나 괴로워하는지를 봐오고 있습니다.  특히 2019년부터 2020년 올해까지도 대한민국을 넘어 해외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던 ‘n번방’ 사건, 즉 ‘텔레그램 성 착취 방’ 사건을 다들 기억하실 겁니다. '텔레그램 성 착취 방‘ 사건은 텔레그램이라는 인터넷 메신저를 통하여 여러 범죄자가 개별적으로 저지른 유사한 범죄를 통칭으로 부르는 말로, 2019년 2월경 텔레그램에 개설된 단체 채팅방을 통해 성 착취 음란물을 거래 및 유포한 디지털 성범죄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들을 상대로 전 세계의 전 연령층의 사람들이 가한 성범죄로, 많은 피해자 여성들의 인권이 무시된 채 끔찍한 성범죄를 당하며 말로 다 이룰 수 없는 고통을 받았던 성범죄입니다.

이처럼 지금 당장까지도 일본군 ’위안부‘와 같은 강제적인 성범죄를 많은 이들이 겪고, 그로 인해 수많은 고통을 떠안고, 현재까지도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끊으려고 하거나, 사람들의 시선이 무서워 그저 홀로 떨고 있거나,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함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도움 한 번 받지 못한 채 살아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마치 당시 일본 정부의 암묵적인 동의 및 허락 하에 행해져 일본군에게 성범죄를 당했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들처럼, 이렇게 사는 것보다는 차라리 죽는 것이 나을 거라 생각했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들처럼, 자신이 성범죄를 당했다는 것이 너무나도 수치스럽고 주위 사람들이 어떻게 바라볼지가 무서워 떨었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들처럼, 겨우겨우 살아서 다시 가족들의 품으로,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갔을 때 그 어리고 여린 몸으로 가차 없이 받아야 했던 사람들의 눈초리에 괴로움의 몸부림을 쳤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여성들처럼. 그렇게 우리는 일제강점기 당시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여성분들이 겪었던 그 일들을 지금도 계속해서 겪어오고 있고, 바라보고 있고, 그에 누군가는 괴로움을, 누군가는 아픔을 느끼며, 누군가의 인권을 존중하지 않은 채 짓밟고, 누군가의 삶의 희망을 앗아가는 현실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에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을 등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사건의 기록물들이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에 등재되는 것은 단순히 한국의 슬프고 아픈 역사를 보존하는 데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더욱이 나아가서 우리는 일본군 ’위안부‘ 사건을 전 세계의 사람들에게 알리고, 아프지만 소중하고 슬프지만 잊어서는 안 될 역사를 귀중한 역사로 보존하며 여태까지도 전 세계에서 무수한 성범죄로 고통받는 이들을 위한 소중한 기록이자 유산이자, 그 기록들이 곧 그들의 편이 될 수 있습니다. 일본군 ’위안부‘와 같은 사건은 사실상 현재까지도 우리나라의 많은 이들을, 그리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을 힘들게 하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 많은 이들에게 여전히 나타나며 인권을 깎아내리고, 무차별적인 범죄를 저지르고는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세상에서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들이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에 등재가 된다면, 그것은 분명히 이 세상의 많은 이들에게 큰 힘이 될 것이고, 특히나 일본군 ’위안부‘와 같은 범죄를 직접적으로 당한 이들에게는 더욱 그들의 편이 될 것이며, 동시에 일본군 ’위안부‘ 사건이라는 참담한 역사를 겪은 우리나라의 민족들에겐 더욱이 큰 힘이, 그리고 시간이 지나서라도 맞이하는 위안이 될 수 있을 겁니다. 그 참담하고도 고통스러운 역사를 직접 겪으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님들께는 시간이 한참이나 지나고서 그나마 그들의 아픔을 이해해 주고, 그나마 그들의 고통을 껴안아주고, 그 당시의 국가와 주위 사람들, 가족, 친구 등 세상의 많은 이들에게 계속해서 무시 당하고 질타 받기만 하며 살아왔던 그 아픔들을 지금에서나마 위로받는 심정은 더욱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너무나도 벅차실 겁니다.

이렇게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들이 세계 유네스코 기록 유산에 등재되는 것은 일본군 ’위안부‘의 피해자분들, 일본군 ’위안부‘라는 역사를 겪어왔고 앞으로도 영원히 껴안고 다독이며 살아갈 우리나라의 민족들, 그리고 일본군 ’위안부‘와도 같은 참혹한 성범죄를 겪은 전 세계 수많은 이들에게 힘이 되어주고, 위안이 되어주고,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다 아물지 못한 채 계속해서 흉터로 남아 있는 아픔을 둘러싸주는 연고가 될 것입니다. 단순히 우리나라를 비롯한 당시 일본의 식민지 및 점령지의 여성들이 겪은 고통스러운 성범죄로만 끝나는 역사가 아니라, 당시 일본이 했던 악행으로 인해 무참히 짓밟혔던 많은 이들의 인권, 당시 일본의 악행으로 인해 무수히 발생했던 많은 이들의 아픔, 무수히 사라졌던 소중한 생명들을 지금에서라도 제대로 따스하게 품어줄 수 있는 행위, 지금에서라도 그들의 아픔을 공감하고 영원히 잊지 않겠다는 확실한 다짐, 그뿐만 아니라 성범죄를 당하고서 고통받고 매일매일을 울고 있을 수많은 이들을 위한 치료제가 될 수 있는, 전 세계적으로 성범죄의 잔인함 등을 더욱 널리 알리고, 그에 대한 경각심을 알릴 수 있는, 대한민국을 넘어 전 세계를 더욱 평화롭게 만들 수 있는 열쇠라고 생각되는 이 역사를, 우리는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에 등재하여 많은 이들을 위로하고, 많은 이들을 다독이고, 그렇게 한 명 한 명을 껴안아줌으로 인해 평화롭고도 더욱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 데에, 더욱 따뜻한 세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데에 기여할 수 있습니다.

1975년, 일본에서 배봉기 할머님께서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 말씀하셨지만 너무나도 안타깝게도 그 이야기는 우리나라에 제대로 닿지도 못한 채 할머님의 아픔으로만 묻혔었습니다. 하지만 1991년, 대한민국에서 일본군 ’위안부‘ 사건을 말씀하셨던 김학순 할머님의 이야기는 묻히지 않은 채, 점점 큰 용기를 내시고서 말씀을 시작하신 일본군 ’위안부‘ 할머님들의 이야기는 아직도 끊어지지 않은 채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YouTube, 일본군 위안부 애니메이션 '끝나지 않은 이야기' 中
YouTube, 일본군 위안부 애니메이션 '끝나지 않은 이야기' 中

그리고 2006년 미국의 한 대학교에서 열린 증언집회에서, 여태껏 이러한 말씀을 하시기 위해 정말 수많은 용기를 내시고, 평생 지워지지 않을 아픔을 다시 한번 마주하신 할머님들께서는 한 미국 여대생의 어디에서 그런 용기가 생겼냐는 질문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증언을 경청해주는 여러분들의 반응이 나를 당당하게 만들어줍니다.”라고. 이야기를 하였을 때 들어주는 이가 있다면 그것은 분명히 말하는 이에게 힘이 되어주고, 위안이 되어주고, 그 사람의 당당함이 되어줍니다. 그리고 그 사실은 일본군 ’위안부‘ 할머님들뿐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도 해당합니다. 여전히 수많은 성폭행으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 이러한 아프고 고통스러운 역사를 가진 채 낫지 않을 상처를 품고 사는 우리 민족들에게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들이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에 등재되는 것은 그들 모두가 당당해지고, 자신들이 혼자가 아님을 알게 되는, 그들이 잘못된 것이 아니며, 그들이 당당하게 사람들 앞에 나서서 목소리를 높여도 충분함을 깨닫게 해줄 수 있을 겁니다.

이처럼 우리나라만을 위한 것만도 아니고, 그저 그 역사를 기억하고 잊지 않기만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의 평화와 성범죄 피해자분들을 위한 위로의 한 걸음이라는 것을 모두 알아주셨으면, 이렇게나 큰 가치와 의미를 지닌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들을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에 등재해 주셨으면 합니다.

아가야……

아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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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야……

민주상

오가민

어딜 갔다 왔느냐고

무얼 하고 왔느냐고

거긴 춥진 않았냐고

혹여나 그랬다면 몸은 성하냐고,

묻고 싶은데

그러고 싶은데……

그럴 수 없는 것이

너를 둔 이 몸의 마음이라

 

아직까지도 생각난다.

해 지는 줄 모르고 뛰어놀던 당찬 날의 네가,

내가 부르면 그제서야 멋쩍은 웃음으로 돌아오던 네가

그렇게 항상 돌아왔었는데

 

13년 전 그날,

한 번을 울 줄 몰랐던 네가

처음으로 나를 애타게 부르며 울었던 그 날,

그 날이 마지막인 걸 알았다면

네가 양팔 붙잡혀 끌려가는 순간에도

붙잡은 손을 떼어내곤 내 뒤로 숨겼어야 했다.

엉엉 울며 그 여린 손으로 내 치맛단을 잡아당기는 그 순간에도

큰 트럭에 밀리듯 올라가는 그 순간에도

그 시꺼먼 총구를 내 머리에 들이대는 순간에도

놓치지 말았어야 했다.

 

이제 바라는 건 하나뿐이다,

울면서 돌아오진 않길

내가 기억하던 그 모습 그대로이길

 

지치고 지쳤을 밤을 지나

동 틀 무렵

 

다시 돌아온 것이 좋은 듯

이제 다 끝났다는 듯

아무 말 없이 헤픈 웃음을 지으며 안기는 널 보아하니

 

그래, 그리하면 되었다.

 

그 모습 이제는 내가 기억하려니,

잊지 않고 내가 꼭 알릴 터이니,

걱정 말어라

 

늙어가는 이 몸이 할 수 있는 건

남은 힘 다 바쳐 목 놓아 소리치는 것밖에 없어도

찬란할 수 있었던 너의 그 날들은

꼭 돌려놓으마!

 

그자들이 반대하고 내 남은 날들에 먹을 칠해도

내 뜻을 함께하는 이들과 함께 울며 싸울 테니

마음 쓰지 말거라!

 

이제 너의 앞날은 꽃으로만 가득할 테니

너의 모든 날들은 내가 기억하고 우리가 기록하마.

 

아가야,

수고했다

 

이제 좀 쉬어라.

 

 

 

세계의·세기의 유산, 일본군‘위안부’의 기록

 

세계의·세기의 유산,

일본군‘위안부’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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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세기의 유산,

일본군‘위안부’의 기록

평화상

류다인

서론

1991년 김학순의 증언으로 세상에 알려진 일본군‘위안부’의 전쟁범죄는 현재까지 약 1,000여건이 넘는 공문서뿐만 아니라, 군인의 회고록 및 피해자 증언을 통해 한국을 포함한 대만, 중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네덜란드 등 그 범세계적인 피해가 입증되었다.

이에 일본군‘위안부’ 문제의 진상 규명을 향한 노력이 이어졌고, 그 과정에서 수집된 기록 및 자료를 바탕으로 2016년 일본군‘위안부’ 관련 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가 촉구되었다. 하지만 해당 시도는 일본의 훼방으로 인해 안타깝게 실패했고, 이후 재개될 다음 시도에서는 등재의 쾌거를 희망하며 본 소논문을 작성하는 바이다.

1장에서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의 목적과 등재 조건에 일본군‘위안부’ 기록물이 부합함을 시사한다. 2장에서는 특히 해당 기록을 여성인권의 패러다임으로 살펴보고, 인류가 지켜야할 귀중한 자료임을 밝히며 등재촉구의 의의를 강화한다. 3장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군‘위안부’ 관련 기록물의 유네스코 등재를 반대하는 일본 측의 주장과 대응을 살펴보고, 그들의 주장에 대한 반박 입장을 표명하며, 사례를 통해 입장의 타당성을 확보하고자 한다.

물론 일본군‘위안부’의 역사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만으로 종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이를 계기로 일본의 그릇된 행위의 기록이 세계적으로 인정되고 또 보존된다면, 일본의 범죄시인 및 사과뿐만 아니라, 지금껏 행해졌던 여러 그릇된 전쟁범죄와 낮은 여성인권에 대한 재고의 전환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미래 후손에게도 지속적으로 해당 기록이 회자되면서, 인류 전반에 반성과 성찰의 물결을 불러 일으켜 종국에는 인류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기를 기대하는 바이다.

 

1장

1.1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의 목적과 등재조건

유네스코는 세계의 기록유산이 전 인류의 자산이라 판단하고, 이를 보존 및 전유하기 위해 1992년 세계기록유산사업을 창설하였다. 1995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 사업은 세계 각국의 다양한 기록물을 기록유산으로 지정하고, 기록의 중요성 및 가치 인식 제고, 접근성 향상, 보존 및 보급 등을 목표로 활동하고 있다.

이러한 유네스코의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기 위해서는 기록물이 첫째, 진정성이 있어야 하며, 둘째, 유일하고 비대체적이어야 하며, 셋째, 세계적인 관점에서 중요성을 지녀야 한다. 이러한 주요조건 외에도 희귀성, 보존성, 안전성, 관리 계획성 등의 여러 보조 요건의 충족이 필요하며, 이를 바탕으로 총 7가지의 등재절차를 밟은 후 등재가 실현된다.

 

1.2 등재조건을 바탕으로 본 일본군‘위안부’ 관련 기록물

2015년 제 12차 국제자문위원회 총회에서 세계기록유산 사업의 투명성과 가시성 제고를 위해 제도의 전면적인 개선 논의가 이루어졌고, 이에 2017년 이후 신규기록유산 등재접수는 잠정 중단된 상태이지만, 앞서 언급한 등재조건이 지속적으로 유지될 것이라는 전제 하에 기록물의 조건 부합을 판단하고자 한다.

첫째, 유산의 진정성은 해당 유산의 본질 및 유래를 증명할 수 있어야 함을 뜻하며, 2016년 등재 접수한 일본군‘위안부’ 관련 기록물은 8개국 15개 단체 및 기관을 주체로, 공문서를 포함해 피해자들의 증언과 그들의 치료기록, 시민사회 운동 등 역사적으로 유래를 증명할 수 있는 총 2,744건의 기록물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일본군‘위안부’ 기록물은 진정성의 조건에 합치된다고 판단할 수 있다.

둘째, 유일함과 비대체성은 유산이 특정 기간과 지역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음이 분명하며, 유산의 소멸 및 품질하락이 인류 발전의 해악임을 의미한다. 이와 관련하여 일본군‘위안부’ 관련 기록물은 이미 2017년 2월 유네스코 등재심사소위원회(RSC)에서 유일하고 비대체적이라는 평가를 받은 바 있다. 이는 앞서 언급한 2016년 일본군‘위안부’의 목소리(Voices of Comfort Women)의 등재신청 결과 평가로, 유네스코 역시 해당 기록물의 유일성과 비대체성을 인정한 것이다.

셋째, 세계적 관점에서의 중요성은 한 지역이 아닌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였는지에 대한 여부이다. 일본군‘위안부’는 한국, 대만, 중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뿐만 아니라 네덜란드와 같은 유럽 국가에도 피해를 끼쳤으며, 과거와 현재 여성의 인권에 대한 광범위한 문제이므로, 세계적인 관점에서의 중요성 조건 역시 충족한다.

따라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조건을 바탕으로 판단한 ‘위안부’관련 기록물은 등재조건에 모두 부합하며, 이는 일본군‘위안부’ 문제의 역사적 사실과 피해 실태를 세계기록유산으로 보존하기 위한 등재촉구에 당위성이 존재함을 시사한다.

 

2장

2.1 여성인권의 패러다임으로 본 일본군‘위안부’ 관련 기록물

여성은 전쟁이 야기한 여러 참혹함 속에서 빈번한 성적 학대를 당해왔다. 혼란한 전시 상황 속에서 취약하게 노출된 여성들은 성범죄의 피해자가 되고, 그 화살은 전쟁이었다는 이유만으로 가해자를 교묘히 피한 채 여성에게로 돌아와 꽂혔다. 그 고통과 괴로움의 책임을 오롯이 감당해야하는 여성들은 가해자 없는 피해자가 되어 속울음을 삼켰고, 일본군'위안부'의 피해자들 역시 그래왔다.

하지만 1991년 '위안부'의 여성 피해자들은 하나 둘 당당히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이를 통해 전 세계적으로 일본의 반인류적 전쟁범죄를 고발했다. 또한 30여 년간의 '위안부' 운동을 통해 인간존엄성과 여성인권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해왔으며, 이로써 모든 전시 성범죄 피해자들에게는 위로를, 모든 여성에게는 용기를 심어주었다. '위안부' 운동은 이제 국제사회에서 여성인권 운동의 상징으로 거듭나게 되었고, 인류 역사상 여성인권 옹호의 모범이 된 것이다.

이렇듯 '위안부' 사건의 진실과 책임의 문제를 내포하는 일본군'위안부' 관련 기록물은 여성인권을 논의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자료이다. 다시 말해, 일본군'위안부' 기록물은 여성인권가치의 신장이자 여성인권운동의 결과물이며, 역사의 문제를 넘어 인류의 보편적인 인권에 대한 방향인 것이다. 따라서 해당 기록물을 통해 과거 및 현재 여성인권에 대한 세상의 깊은 통찰과 반성을 포함하여, 인권 발전에까지 이룩할 수 있도록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촉구가 더욱 절실하다.

 

3장

3.1 ‘위안부’ 기록물의 유네스코 등재 촉구에 대한 일본 측 대응과 주장

이러한 타당성에도 불구하고 일본군'위안부' 기록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막기 위해, 일본은 유네스코에 ''위안부'와 일본군 군율에 관한 기록'의 심사를 단독으로 신청했으며, 해당 자료에는 '위안부'가 강제가 아닌 합법적으로 운영되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위안부'와 일본군 군율에 관한 기록'으로 '위안부'의 전반이 합법적이었다고 주장하는 일본 측은 '군·관헌이 조선인'위안부'를 강제연행 했다는 공문서를 찾지 못했다'며 조선인'위안부'의 강제연행을 부정하고 있다. 공문서는 객관적인 증거이자 자료이기 때문에, 일본은 '위안부'의 강제에 관련된 공문서의 부재를 앞세우며 그들의 주장을 피력한 것이다.

게다가 상당한 분담금을 내는 일본 정부가 분담금 지급유예와 탈퇴를 이용해 유네스코를 압박하였고, 이에 결국 유네스코는 이해 당사국의 인식차이를 이유로 2017년 일본군'위안부' 기록의 세계기록유산 등재 심사 결과 보류를 택했다.

 

3.2 일본 측 주장에 대한 반박

일본 측이 주장한 강제연행 문서의 부재는 일본의 위치에서 되짚어 그들에게 반문해볼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가해자의 위치에 존재하는 일본이 그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공문서를 굳이 정확하게 기록하고 보존했다는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일본이 그들이 저지른 범죄를 공문서로 제작함에 있어, 피해자 측에서는 가해자가 작성한 그 문서의 진실성과 실효성이 의심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즉, 일본이 주장하는 공문서 부재의 기저에 일본이 '위안부' 문제를 공문서로 기록하지 아니하고 은폐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실제로 여러 일본 정부의 공문서를 통해, '위안부' 운영 전반에 일본 정부와 일본군이 적극적으로 주도하고 계획적으로 가담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공문서에 대한 일본 정부의 개입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공문서만으로 '위안부' 강제연행 여부를 비롯한 전체 사건을 판단하는 것에는 문제가 있어 보인다.

 

3.3 증인의 진술을 통한 편파적인 공문서의 한계 극복과 그 사례

이러한 공문서의 한계를 보완하는 것이 바로 증인의 진술이다. 재판에서도 목격자와 관계자의 증언이 중요하게 작용하듯이, 일본군'위안부' 문제에서도 이를 직접 경험한 피해자의 증언과 군인들의 회고록이 중요한 가치를 지녀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개인의 기억과 증언들은 공문서와 달리 주관성에 치우칠 수 있으며 과장되거나 왜곡될 가능성이 있어, 그 정확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공문서 부재 반박의 증거나 세계기록유산으로서의 효력에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의 사례를 언급함으로써 이러한 의심을 잠재울 수 있는데, 그것이 바로 201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프랑크푸르트 아우슈비츠 재판이다.

해당 기록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운영을 도운 나치 친위대의 전범 재판에 관한 것으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이 자행한 유태인 대학살과 관련이 있다. 454건의 문서와 103건의 녹음물로 구성된 프랑크푸르트 아우슈비츠 재판 기록은 독일의 추진으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인정받았으며, 여기서 중요한 점은 해당 기록에 증인의 진술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해당 기록에 강제수용소의 생존자 181명과 수용소 직원 80명을 포함해 총 319명의 증인의 진술이 포함되었는데, 이러한 유네스코의 결정은 공문서가 아닌 증언 역시 그 정확성과 가치를 인정받고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될 수 있음을 나타낸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위안부'가 합법적으로 행해졌다는 일본 측의 주장과 조선인'위안부'가 강제연행 되지 않았다는 그들의 부정은 피해자와 타 관계자의 증언을 바탕으로 재고가 필요하며, 유네스코는 일본군'위안부' 관련 기록물 역시 아우슈비츠 재판의 사례처럼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될 수 있도록 여러 다양한 자료를 바탕으로 적극적인 재검토를 실시해야한다.

 

결론

가해국과 피해국 사이에서 이미 일어난 과거의 전쟁과 식민지배의 문제는 지금으로서는 바꿀 수 없는 역사가 되어버렸고, 그 역사의 응어리와 한을 풀 수 있는 단 하나의 해결책이 바로 가해국의 진심어린 사죄이다. 가해국은 스스로 저질렀던 잘못과 그릇된 행동들을 시인하고 반성하는 태도가 필요하며, 독일이 진행했던 프랑크푸르트 아우슈비츠 재판 세계기록유산 등재의 선 사례처럼 가해국의 속죄와 노력으로 서로간의 갈등을 완화해야한다.

하지만 일본은 지금껏 일본군‘위안부’뿐만 아니라 중국 침략과 한국의 식민지 지배에 대한 반성 없이 평화국가임을 자칭하며 눈속임을 해왔고, 여전히 앞길을 막으며 잘못에 대한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다. 현재 일본의 훼방은 우리에겐 일시적인 장애물일 뿐이며 언젠가는 그들이 숨기고자한 모든 사실이 탄로 나게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때문에 국제적으로 그들의 잘못을 알릴 수 있는 일본군‘위안부’ 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가 더욱 절실하다. 해당 기록물은 세계기록유산 등재조건에 모두 부합할 뿐만 아니라 여성인권 가치 신장의 나침반이며, 또 일본의 빈약한 주장에 맞설 수 있는 강력한 힘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에 다음 시도에서만큼은 반드시 성공적인 등재로 이어져야 한다. 이를 통해 일본이 하루빨리 시인과 속죄, 책임을 다하기를 바라며, 전쟁범죄와 여성인권에 대한 인식재고의 물결이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 보편적인 인류의 성장과 발전에 기여하길 바라는 바이다.

일본군 ‘위안부’, 기억되어야 하는 우리의 역사

 

일본군 ‘위안부’,

기억되어야 하는 우리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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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기억되어야 하는 우리의 역사

민주상

박정현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에 앞서 일본군 ‘위안부’라는 이름하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지니게 된 수많은 분께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 공모전에 제출할 글을 준비하면서 평소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는지, 같은 민족의 후손으로서 ‘나’라는 사람이 이 어긋난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하지 않았는지에 대해 돌아보고 성찰하는 시간을 가지게 됐던 것 같습니다. 이러한 기회를 마련해주신 공모전 주최자 분들,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고 현재 당당히 세상을 향해 용기 있는 목소리를 내어주시고 계시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께 사과의 말씀을 올리고 싶습니다. 조금 더 일찍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지 않아 죄송하고, 앞으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인지하고 바르게 다잡을 수 있도록 노력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일본군 ‘위안부’. 누군가에게는 생소한 이름일 수 있는 그 단어 속에는 차마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수많은 이들의 눈물과 세월이 담겨 있습니다. 세상에 드러난 진실보다 드러나지 않은 진실이 더 많을 지도 모르는 그 역사를 우리는 제대로 마주해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이에 따라 일본군 ‘위안부’와 관련된 기록물들인 “일본군 ‘위안부’의 목소리(Voices of ‘Comfort Women’)”가 유네스코에 등재되기를 촉구하는 바입니다.

 

일본군 ‘위안부’란 일본군의 성욕 해결, 성병 예방, 치안 유지, 강간 방지 등을 위하여 일본군과 일본정부가 중일전쟁 및 아시아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 점령지나 주둔지 등의 위안소에 배치한 여성들을 부르는 말입니다. 이 위안부로 동원되었던 수많은 여성들은 일본군들에게 성적인 착취를 당해야만 했습니다. 주로 전쟁 당시 일본이 점령했던 지역의 여성들이 ‘위안부’로 많이 동원되었으며, 그중 조선의 여성들이 절반 이상을 차지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와 함께 가면 일을 하게 해주겠다.’, ‘우리와 함께 하면 공부를 할 수 있게 해주겠다.’ 등의 말로 피해자들을 데려갔습니다. 그중 대부분이 아직 10대인 소녀들이었습니다.

 

일본이 ‘위안부’를 대상으로 했던 만행은 차마 말로 할 수 없을 만큼 참혹했습니다. 신체적인 고통도 물론 존재했겠지만 아마 가장 컸던 것은 정신적인 고통이 아니었을까 조심스레 생각하는 바입니다. 그들은 ‘위안부’를 대상으로 폭력을 행사하기도 했고, 소녀들을 ‘성적 노예’로 대우했습니다. 이는 ‘위안부’로 동원됐던 모든 여성들의 성적 자기 결정권을 침해하는 행위이며 또한 그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행위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은 이러한 ‘위안부’에 대한 사실을 부인하고 마주하지 않으려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위안부’와 관련된 자료들을 공개하기를 거부하고, ‘위안부’ 피해자 분들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일본군 ‘위안부’ 사건에 정부가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자료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고, 나아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덮으려 하고 있습니다. 이런 터무니없는 이유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외면하는 것은 전혀 바람직하지 못한 태도입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문제는 일본의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사건을 막으려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일본 정부의 권력에 맞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려면 그것과 관련된 자료를 보존하고, 많은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널리 알려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리고 이와 같은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일본군 ‘위안부’의 목소리”가 유네스코 기록 유산에 등재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일본군 ‘위안부’라고 하면 대한민국과 일본, 이 두 나라의 문제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분명히 계실 거라 생각 됩니다. 하지만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비단 우리나라와 일본 양국 간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적인 문제입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 중 절반 이상이 우리 조선의 여성들이라는 건 명백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일본군 ‘위안부’에 동원된 여성들은 조선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일본, 중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에서 동원된 여성들도 있었습니다. 이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대한민국과 일본, 두 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가 관심을 가지고 해결해 나가야 하는 문제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세계인들의 의식은 매우 얕고 해박합니다. 그러나 “일본군 ‘위안부’의 목소리”가 세계 기록 유산에 등재된다면 이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더 많은 사람들이 접하고 알 수 있게 해주는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자료들이 사라지는 것을 막아줄 것이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세월 속으로 묻히는 일도 일어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전 세계에 있는 기록들을 보존하는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인 만큼, “일본군 ‘위안부’의 목소리”가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에 등재된다면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전 세계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더 관심을 가지게 되고, 피해자 분들의 인권 회복을 위해 노력하려 할 것입니다. 많은 나라들이 관련된 사건인 만큼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심각성과 “일본군 ‘위안부’의 목소리”의 가치는 더 널리 알려져야만 합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보면 대부분이 여성입니다. 이 말은 즉,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여성 인권 침해와도 관련이 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앞서 말했듯 일본군 ‘위안부’는 인간이면 누구나 가지게 되는 ‘인권’을 보장받지 못했습니다. 인권이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는 권리로 자유롭게 살 권리, 평등하게 대우 받을 권리 등 다양한 권리들을 포함하는 말입니다. 하지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은 늘 군인들의 감시를 받으며 자유롭게 생활하지 못했고,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도 못했습니다. 이러한 사실들에 근거하여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여성 인권 침해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은 일본의 ‘위안부’ 문제 회피로 인해 그들로부터 인권 침해에 대한 진심 어린 사과 한 마디도 받지 못했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분들은 최초로 증언이 나왔던 1991년 이후 계속해서 목소리를 내어주고 계십니다. 자신들의 침해당한 인권을 위해, 그리고 눈물로 지샌 지난 세월을 위로받기 위해 갖은 고초를 무릅쓰고 당당히 일본과 맞서고 계십니다. 저는 ‘위안부’ 피해자 분들의 진심 어린 목소리와 발자취가 전 세계에 전해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자신이 겪은 일을 당당히 말하고 가해자에게 사과를 요구하는 ‘위안부’ 피해자 분들의 그 숭고하고도 아름다운 용기가 기억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나아가 여성 인권 회복에 영향을 주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그들의 아픈 세월을 기록하고 보존해야 합니다.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또다시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더 이상 피해자 분들이 눈물 흘리지 않도록 우리가 기억해야 합니다. “일본군 ‘위안부’의 목소리”가 모이게 된 이유도, 등재되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명백한 여성 인권 침해의 사례입니다. 이는 “일본군 ‘위안부’의 목소리”가 보존되어야 하는 또 다른 이유입니다.

 

전 세대의 인류가 다음 세대의 인류에게 남겨놓은 기록들을 바탕으로 우리는 어떠한 일을 했을 때에 생겨날 피해와 결과를 예측하고 이를 예방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기록을 바탕으로 우리는 해당 문제에 대한 보완점을 찾고, 더 나은 방식으로 발전해 나갑니다. “일본군 ‘위안부’의 목소리”가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으로 등재된다면, 우리는 이와 같은 아픈 역사가 되풀이 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해결책 또한 발견해 낼 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일본군 ‘위안부’의 목소리”는 우리 인류에게 충분한 교훈과 의미를 전달해줄 수 있는 가치를 지닌 기록입니다. 우리는 이 기록을 통해 좁은 의미에서는 성범죄 피해자들의 고통을, 넓은 의미에서는 여성 인권 침해에 대한 심각성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일본군 ‘위안부’의 목소리”는 단순한 기록물이 아니라 우리에게 어떠한 가치와 교훈을 전해줄 수 있는 명백한 유산입니다.

 

일본군 ‘위안부’는 우리가 잊으면 안 되는 중요한 역사들 중 하나입니다. 우리는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 명확히 인지하고 그것을 해결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비단 대한민국과 일본 양국 간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가 관련된 문제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역사를 기록하고 보존해야 합니다. “일본군 ‘위안부’의 목소리”는 명백한 독자적인 기록이며, 후대에 전해줄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는 소중한 유산들입니다. 이에 따라 유네스코 측에서 “일본군 ‘위안부’의 목소리”가 가지고 있는 가치를 다시 한 번 되새기고 세게 기록 유산으로 등재해주기를 촉구하는 바입니다.

 

참고 자료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여성가족부 일본군 위안부 e역사관, 두산 백과, 유네스코와 유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