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가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에 등재 되어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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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가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에 등재 되어야 하는 이유

민주상

박지은

안녕하세요. 저는 학교 선생님을 통하여 이 공모전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그로 인해서 ‘일본군 위안부’라는 역사적 사실과 수많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님들의 이야기와 말씀들을 더욱 많은 사람들이 알아주는 것뿐만이 아니라, 세계 기록 유산에 등재 하는 것에 큰 관심과 동의하는 마음을 갖게 되어서 이렇게 글을 써 내려가게 된 대한민국의 고등학생입니다.

우선 일본군 ‘위안부’는 일본이 식민지 및 점령지의 여성들에게 저지른 성범죄로써, 일본군들의 성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 납치, 매매 등을 통해 성적 행위를 강제적으로 당한 여성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위안부는 영원히 잊히지 않고, 영원히 잊으려 하지도 않을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이자 ‘위안부’에 속하여 그 고통을 하나하나 직접 다 겪었던 분들께는 너무나도 치욕스럽고 평생 씻기지 않을 아픔입니다. 그런데 일본군 ‘위안부’와 같은 일은 당시 여성들만이 겪었던 고통과 아픔이 아니라, 현재까지도 수많은 나라에서 수많은 여성들이 끊임없이 겪어오고 고통받는 일입니다.

 

기사, 윤미향과 정의연 스캔들 ②: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본질과 정대협의 노선
기사, 윤미향과 정의연 스캔들 ②: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본질과 정대협의 노선

지금까지도 우리는 계속해서 여성을 상대로 한 성범죄를 접하고 있고, 여성을 향한 성범죄에 피해 받은 여성들이 얼마나 무너지고 얼마나 괴로워하는지를 봐오고 있습니다.  특히 2019년부터 2020년 올해까지도 대한민국을 넘어 해외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던 ‘n번방’ 사건, 즉 ‘텔레그램 성 착취 방’ 사건을 다들 기억하실 겁니다. '텔레그램 성 착취 방‘ 사건은 텔레그램이라는 인터넷 메신저를 통하여 여러 범죄자가 개별적으로 저지른 유사한 범죄를 통칭으로 부르는 말로, 2019년 2월경 텔레그램에 개설된 단체 채팅방을 통해 성 착취 음란물을 거래 및 유포한 디지털 성범죄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들을 상대로 전 세계의 전 연령층의 사람들이 가한 성범죄로, 많은 피해자 여성들의 인권이 무시된 채 끔찍한 성범죄를 당하며 말로 다 이룰 수 없는 고통을 받았던 성범죄입니다.

이처럼 지금 당장까지도 일본군 ’위안부‘와 같은 강제적인 성범죄를 많은 이들이 겪고, 그로 인해 수많은 고통을 떠안고, 현재까지도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끊으려고 하거나, 사람들의 시선이 무서워 그저 홀로 떨고 있거나,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함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도움 한 번 받지 못한 채 살아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마치 당시 일본 정부의 암묵적인 동의 및 허락 하에 행해져 일본군에게 성범죄를 당했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들처럼, 이렇게 사는 것보다는 차라리 죽는 것이 나을 거라 생각했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들처럼, 자신이 성범죄를 당했다는 것이 너무나도 수치스럽고 주위 사람들이 어떻게 바라볼지가 무서워 떨었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들처럼, 겨우겨우 살아서 다시 가족들의 품으로,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갔을 때 그 어리고 여린 몸으로 가차 없이 받아야 했던 사람들의 눈초리에 괴로움의 몸부림을 쳤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여성들처럼. 그렇게 우리는 일제강점기 당시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여성분들이 겪었던 그 일들을 지금도 계속해서 겪어오고 있고, 바라보고 있고, 그에 누군가는 괴로움을, 누군가는 아픔을 느끼며, 누군가의 인권을 존중하지 않은 채 짓밟고, 누군가의 삶의 희망을 앗아가는 현실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에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을 등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사건의 기록물들이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에 등재되는 것은 단순히 한국의 슬프고 아픈 역사를 보존하는 데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더욱이 나아가서 우리는 일본군 ’위안부‘ 사건을 전 세계의 사람들에게 알리고, 아프지만 소중하고 슬프지만 잊어서는 안 될 역사를 귀중한 역사로 보존하며 여태까지도 전 세계에서 무수한 성범죄로 고통받는 이들을 위한 소중한 기록이자 유산이자, 그 기록들이 곧 그들의 편이 될 수 있습니다. 일본군 ’위안부‘와 같은 사건은 사실상 현재까지도 우리나라의 많은 이들을, 그리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을 힘들게 하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 많은 이들에게 여전히 나타나며 인권을 깎아내리고, 무차별적인 범죄를 저지르고는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세상에서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들이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에 등재가 된다면, 그것은 분명히 이 세상의 많은 이들에게 큰 힘이 될 것이고, 특히나 일본군 ’위안부‘와 같은 범죄를 직접적으로 당한 이들에게는 더욱 그들의 편이 될 것이며, 동시에 일본군 ’위안부‘ 사건이라는 참담한 역사를 겪은 우리나라의 민족들에겐 더욱이 큰 힘이, 그리고 시간이 지나서라도 맞이하는 위안이 될 수 있을 겁니다. 그 참담하고도 고통스러운 역사를 직접 겪으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님들께는 시간이 한참이나 지나고서 그나마 그들의 아픔을 이해해 주고, 그나마 그들의 고통을 껴안아주고, 그 당시의 국가와 주위 사람들, 가족, 친구 등 세상의 많은 이들에게 계속해서 무시 당하고 질타 받기만 하며 살아왔던 그 아픔들을 지금에서나마 위로받는 심정은 더욱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너무나도 벅차실 겁니다.

이렇게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들이 세계 유네스코 기록 유산에 등재되는 것은 일본군 ’위안부‘의 피해자분들, 일본군 ’위안부‘라는 역사를 겪어왔고 앞으로도 영원히 껴안고 다독이며 살아갈 우리나라의 민족들, 그리고 일본군 ’위안부‘와도 같은 참혹한 성범죄를 겪은 전 세계 수많은 이들에게 힘이 되어주고, 위안이 되어주고,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다 아물지 못한 채 계속해서 흉터로 남아 있는 아픔을 둘러싸주는 연고가 될 것입니다. 단순히 우리나라를 비롯한 당시 일본의 식민지 및 점령지의 여성들이 겪은 고통스러운 성범죄로만 끝나는 역사가 아니라, 당시 일본이 했던 악행으로 인해 무참히 짓밟혔던 많은 이들의 인권, 당시 일본의 악행으로 인해 무수히 발생했던 많은 이들의 아픔, 무수히 사라졌던 소중한 생명들을 지금에서라도 제대로 따스하게 품어줄 수 있는 행위, 지금에서라도 그들의 아픔을 공감하고 영원히 잊지 않겠다는 확실한 다짐, 그뿐만 아니라 성범죄를 당하고서 고통받고 매일매일을 울고 있을 수많은 이들을 위한 치료제가 될 수 있는, 전 세계적으로 성범죄의 잔인함 등을 더욱 널리 알리고, 그에 대한 경각심을 알릴 수 있는, 대한민국을 넘어 전 세계를 더욱 평화롭게 만들 수 있는 열쇠라고 생각되는 이 역사를, 우리는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에 등재하여 많은 이들을 위로하고, 많은 이들을 다독이고, 그렇게 한 명 한 명을 껴안아줌으로 인해 평화롭고도 더욱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 데에, 더욱 따뜻한 세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데에 기여할 수 있습니다.

1975년, 일본에서 배봉기 할머님께서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 말씀하셨지만 너무나도 안타깝게도 그 이야기는 우리나라에 제대로 닿지도 못한 채 할머님의 아픔으로만 묻혔었습니다. 하지만 1991년, 대한민국에서 일본군 ’위안부‘ 사건을 말씀하셨던 김학순 할머님의 이야기는 묻히지 않은 채, 점점 큰 용기를 내시고서 말씀을 시작하신 일본군 ’위안부‘ 할머님들의 이야기는 아직도 끊어지지 않은 채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YouTube, 일본군 위안부 애니메이션 '끝나지 않은 이야기' 中
YouTube, 일본군 위안부 애니메이션 '끝나지 않은 이야기' 中

그리고 2006년 미국의 한 대학교에서 열린 증언집회에서, 여태껏 이러한 말씀을 하시기 위해 정말 수많은 용기를 내시고, 평생 지워지지 않을 아픔을 다시 한번 마주하신 할머님들께서는 한 미국 여대생의 어디에서 그런 용기가 생겼냐는 질문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증언을 경청해주는 여러분들의 반응이 나를 당당하게 만들어줍니다.”라고. 이야기를 하였을 때 들어주는 이가 있다면 그것은 분명히 말하는 이에게 힘이 되어주고, 위안이 되어주고, 그 사람의 당당함이 되어줍니다. 그리고 그 사실은 일본군 ’위안부‘ 할머님들뿐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도 해당합니다. 여전히 수많은 성폭행으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 이러한 아프고 고통스러운 역사를 가진 채 낫지 않을 상처를 품고 사는 우리 민족들에게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들이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에 등재되는 것은 그들 모두가 당당해지고, 자신들이 혼자가 아님을 알게 되는, 그들이 잘못된 것이 아니며, 그들이 당당하게 사람들 앞에 나서서 목소리를 높여도 충분함을 깨닫게 해줄 수 있을 겁니다.

이처럼 우리나라만을 위한 것만도 아니고, 그저 그 역사를 기억하고 잊지 않기만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의 평화와 성범죄 피해자분들을 위한 위로의 한 걸음이라는 것을 모두 알아주셨으면, 이렇게나 큰 가치와 의미를 지닌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들을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에 등재해 주셨으면 합니다.

아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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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야……

민주상

오가민

어딜 갔다 왔느냐고

무얼 하고 왔느냐고

거긴 춥진 않았냐고

혹여나 그랬다면 몸은 성하냐고,

묻고 싶은데

그러고 싶은데……

그럴 수 없는 것이

너를 둔 이 몸의 마음이라

 

아직까지도 생각난다.

해 지는 줄 모르고 뛰어놀던 당찬 날의 네가,

내가 부르면 그제서야 멋쩍은 웃음으로 돌아오던 네가

그렇게 항상 돌아왔었는데

 

13년 전 그날,

한 번을 울 줄 몰랐던 네가

처음으로 나를 애타게 부르며 울었던 그 날,

그 날이 마지막인 걸 알았다면

네가 양팔 붙잡혀 끌려가는 순간에도

붙잡은 손을 떼어내곤 내 뒤로 숨겼어야 했다.

엉엉 울며 그 여린 손으로 내 치맛단을 잡아당기는 그 순간에도

큰 트럭에 밀리듯 올라가는 그 순간에도

그 시꺼먼 총구를 내 머리에 들이대는 순간에도

놓치지 말았어야 했다.

 

이제 바라는 건 하나뿐이다,

울면서 돌아오진 않길

내가 기억하던 그 모습 그대로이길

 

지치고 지쳤을 밤을 지나

동 틀 무렵

 

다시 돌아온 것이 좋은 듯

이제 다 끝났다는 듯

아무 말 없이 헤픈 웃음을 지으며 안기는 널 보아하니

 

그래, 그리하면 되었다.

 

그 모습 이제는 내가 기억하려니,

잊지 않고 내가 꼭 알릴 터이니,

걱정 말어라

 

늙어가는 이 몸이 할 수 있는 건

남은 힘 다 바쳐 목 놓아 소리치는 것밖에 없어도

찬란할 수 있었던 너의 그 날들은

꼭 돌려놓으마!

 

그자들이 반대하고 내 남은 날들에 먹을 칠해도

내 뜻을 함께하는 이들과 함께 울며 싸울 테니

마음 쓰지 말거라!

 

이제 너의 앞날은 꽃으로만 가득할 테니

너의 모든 날들은 내가 기억하고 우리가 기록하마.

 

아가야,

수고했다

 

이제 좀 쉬어라.

 

 

 

 

세계의·세기의 유산,

일본군‘위안부’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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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세기의 유산,

일본군‘위안부’의 기록

평화상

류다인

서론

1991년 김학순의 증언으로 세상에 알려진 일본군‘위안부’의 전쟁범죄는 현재까지 약 1,000여건이 넘는 공문서뿐만 아니라, 군인의 회고록 및 피해자 증언을 통해 한국을 포함한 대만, 중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네덜란드 등 그 범세계적인 피해가 입증되었다.

이에 일본군‘위안부’ 문제의 진상 규명을 향한 노력이 이어졌고, 그 과정에서 수집된 기록 및 자료를 바탕으로 2016년 일본군‘위안부’ 관련 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가 촉구되었다. 하지만 해당 시도는 일본의 훼방으로 인해 안타깝게 실패했고, 이후 재개될 다음 시도에서는 등재의 쾌거를 희망하며 본 소논문을 작성하는 바이다.

1장에서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의 목적과 등재 조건에 일본군‘위안부’ 기록물이 부합함을 시사한다. 2장에서는 특히 해당 기록을 여성인권의 패러다임으로 살펴보고, 인류가 지켜야할 귀중한 자료임을 밝히며 등재촉구의 의의를 강화한다. 3장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군‘위안부’ 관련 기록물의 유네스코 등재를 반대하는 일본 측의 주장과 대응을 살펴보고, 그들의 주장에 대한 반박 입장을 표명하며, 사례를 통해 입장의 타당성을 확보하고자 한다.

물론 일본군‘위안부’의 역사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만으로 종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이를 계기로 일본의 그릇된 행위의 기록이 세계적으로 인정되고 또 보존된다면, 일본의 범죄시인 및 사과뿐만 아니라, 지금껏 행해졌던 여러 그릇된 전쟁범죄와 낮은 여성인권에 대한 재고의 전환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미래 후손에게도 지속적으로 해당 기록이 회자되면서, 인류 전반에 반성과 성찰의 물결을 불러 일으켜 종국에는 인류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기를 기대하는 바이다.

 

1장

1.1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의 목적과 등재조건

유네스코는 세계의 기록유산이 전 인류의 자산이라 판단하고, 이를 보존 및 전유하기 위해 1992년 세계기록유산사업을 창설하였다. 1995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 사업은 세계 각국의 다양한 기록물을 기록유산으로 지정하고, 기록의 중요성 및 가치 인식 제고, 접근성 향상, 보존 및 보급 등을 목표로 활동하고 있다.

이러한 유네스코의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기 위해서는 기록물이 첫째, 진정성이 있어야 하며, 둘째, 유일하고 비대체적이어야 하며, 셋째, 세계적인 관점에서 중요성을 지녀야 한다. 이러한 주요조건 외에도 희귀성, 보존성, 안전성, 관리 계획성 등의 여러 보조 요건의 충족이 필요하며, 이를 바탕으로 총 7가지의 등재절차를 밟은 후 등재가 실현된다.

 

1.2 등재조건을 바탕으로 본 일본군‘위안부’ 관련 기록물

2015년 제 12차 국제자문위원회 총회에서 세계기록유산 사업의 투명성과 가시성 제고를 위해 제도의 전면적인 개선 논의가 이루어졌고, 이에 2017년 이후 신규기록유산 등재접수는 잠정 중단된 상태이지만, 앞서 언급한 등재조건이 지속적으로 유지될 것이라는 전제 하에 기록물의 조건 부합을 판단하고자 한다.

첫째, 유산의 진정성은 해당 유산의 본질 및 유래를 증명할 수 있어야 함을 뜻하며, 2016년 등재 접수한 일본군‘위안부’ 관련 기록물은 8개국 15개 단체 및 기관을 주체로, 공문서를 포함해 피해자들의 증언과 그들의 치료기록, 시민사회 운동 등 역사적으로 유래를 증명할 수 있는 총 2,744건의 기록물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일본군‘위안부’ 기록물은 진정성의 조건에 합치된다고 판단할 수 있다.

둘째, 유일함과 비대체성은 유산이 특정 기간과 지역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음이 분명하며, 유산의 소멸 및 품질하락이 인류 발전의 해악임을 의미한다. 이와 관련하여 일본군‘위안부’ 관련 기록물은 이미 2017년 2월 유네스코 등재심사소위원회(RSC)에서 유일하고 비대체적이라는 평가를 받은 바 있다. 이는 앞서 언급한 2016년 일본군‘위안부’의 목소리(Voices of Comfort Women)의 등재신청 결과 평가로, 유네스코 역시 해당 기록물의 유일성과 비대체성을 인정한 것이다.

셋째, 세계적 관점에서의 중요성은 한 지역이 아닌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였는지에 대한 여부이다. 일본군‘위안부’는 한국, 대만, 중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뿐만 아니라 네덜란드와 같은 유럽 국가에도 피해를 끼쳤으며, 과거와 현재 여성의 인권에 대한 광범위한 문제이므로, 세계적인 관점에서의 중요성 조건 역시 충족한다.

따라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조건을 바탕으로 판단한 ‘위안부’관련 기록물은 등재조건에 모두 부합하며, 이는 일본군‘위안부’ 문제의 역사적 사실과 피해 실태를 세계기록유산으로 보존하기 위한 등재촉구에 당위성이 존재함을 시사한다.

 

2장

2.1 여성인권의 패러다임으로 본 일본군‘위안부’ 관련 기록물

여성은 전쟁이 야기한 여러 참혹함 속에서 빈번한 성적 학대를 당해왔다. 혼란한 전시 상황 속에서 취약하게 노출된 여성들은 성범죄의 피해자가 되고, 그 화살은 전쟁이었다는 이유만으로 가해자를 교묘히 피한 채 여성에게로 돌아와 꽂혔다. 그 고통과 괴로움의 책임을 오롯이 감당해야하는 여성들은 가해자 없는 피해자가 되어 속울음을 삼켰고, 일본군'위안부'의 피해자들 역시 그래왔다.

하지만 1991년 '위안부'의 여성 피해자들은 하나 둘 당당히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이를 통해 전 세계적으로 일본의 반인류적 전쟁범죄를 고발했다. 또한 30여 년간의 '위안부' 운동을 통해 인간존엄성과 여성인권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해왔으며, 이로써 모든 전시 성범죄 피해자들에게는 위로를, 모든 여성에게는 용기를 심어주었다. '위안부' 운동은 이제 국제사회에서 여성인권 운동의 상징으로 거듭나게 되었고, 인류 역사상 여성인권 옹호의 모범이 된 것이다.

이렇듯 '위안부' 사건의 진실과 책임의 문제를 내포하는 일본군'위안부' 관련 기록물은 여성인권을 논의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자료이다. 다시 말해, 일본군'위안부' 기록물은 여성인권가치의 신장이자 여성인권운동의 결과물이며, 역사의 문제를 넘어 인류의 보편적인 인권에 대한 방향인 것이다. 따라서 해당 기록물을 통해 과거 및 현재 여성인권에 대한 세상의 깊은 통찰과 반성을 포함하여, 인권 발전에까지 이룩할 수 있도록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촉구가 더욱 절실하다.

 

3장

3.1 ‘위안부’ 기록물의 유네스코 등재 촉구에 대한 일본 측 대응과 주장

이러한 타당성에도 불구하고 일본군'위안부' 기록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막기 위해, 일본은 유네스코에 ''위안부'와 일본군 군율에 관한 기록'의 심사를 단독으로 신청했으며, 해당 자료에는 '위안부'가 강제가 아닌 합법적으로 운영되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위안부'와 일본군 군율에 관한 기록'으로 '위안부'의 전반이 합법적이었다고 주장하는 일본 측은 '군·관헌이 조선인'위안부'를 강제연행 했다는 공문서를 찾지 못했다'며 조선인'위안부'의 강제연행을 부정하고 있다. 공문서는 객관적인 증거이자 자료이기 때문에, 일본은 '위안부'의 강제에 관련된 공문서의 부재를 앞세우며 그들의 주장을 피력한 것이다.

게다가 상당한 분담금을 내는 일본 정부가 분담금 지급유예와 탈퇴를 이용해 유네스코를 압박하였고, 이에 결국 유네스코는 이해 당사국의 인식차이를 이유로 2017년 일본군'위안부' 기록의 세계기록유산 등재 심사 결과 보류를 택했다.

 

3.2 일본 측 주장에 대한 반박

일본 측이 주장한 강제연행 문서의 부재는 일본의 위치에서 되짚어 그들에게 반문해볼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가해자의 위치에 존재하는 일본이 그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공문서를 굳이 정확하게 기록하고 보존했다는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일본이 그들이 저지른 범죄를 공문서로 제작함에 있어, 피해자 측에서는 가해자가 작성한 그 문서의 진실성과 실효성이 의심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즉, 일본이 주장하는 공문서 부재의 기저에 일본이 '위안부' 문제를 공문서로 기록하지 아니하고 은폐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실제로 여러 일본 정부의 공문서를 통해, '위안부' 운영 전반에 일본 정부와 일본군이 적극적으로 주도하고 계획적으로 가담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공문서에 대한 일본 정부의 개입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공문서만으로 '위안부' 강제연행 여부를 비롯한 전체 사건을 판단하는 것에는 문제가 있어 보인다.

 

3.3 증인의 진술을 통한 편파적인 공문서의 한계 극복과 그 사례

이러한 공문서의 한계를 보완하는 것이 바로 증인의 진술이다. 재판에서도 목격자와 관계자의 증언이 중요하게 작용하듯이, 일본군'위안부' 문제에서도 이를 직접 경험한 피해자의 증언과 군인들의 회고록이 중요한 가치를 지녀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개인의 기억과 증언들은 공문서와 달리 주관성에 치우칠 수 있으며 과장되거나 왜곡될 가능성이 있어, 그 정확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공문서 부재 반박의 증거나 세계기록유산으로서의 효력에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의 사례를 언급함으로써 이러한 의심을 잠재울 수 있는데, 그것이 바로 201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프랑크푸르트 아우슈비츠 재판이다.

해당 기록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운영을 도운 나치 친위대의 전범 재판에 관한 것으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이 자행한 유태인 대학살과 관련이 있다. 454건의 문서와 103건의 녹음물로 구성된 프랑크푸르트 아우슈비츠 재판 기록은 독일의 추진으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인정받았으며, 여기서 중요한 점은 해당 기록에 증인의 진술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해당 기록에 강제수용소의 생존자 181명과 수용소 직원 80명을 포함해 총 319명의 증인의 진술이 포함되었는데, 이러한 유네스코의 결정은 공문서가 아닌 증언 역시 그 정확성과 가치를 인정받고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될 수 있음을 나타낸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위안부'가 합법적으로 행해졌다는 일본 측의 주장과 조선인'위안부'가 강제연행 되지 않았다는 그들의 부정은 피해자와 타 관계자의 증언을 바탕으로 재고가 필요하며, 유네스코는 일본군'위안부' 관련 기록물 역시 아우슈비츠 재판의 사례처럼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될 수 있도록 여러 다양한 자료를 바탕으로 적극적인 재검토를 실시해야한다.

 

결론

가해국과 피해국 사이에서 이미 일어난 과거의 전쟁과 식민지배의 문제는 지금으로서는 바꿀 수 없는 역사가 되어버렸고, 그 역사의 응어리와 한을 풀 수 있는 단 하나의 해결책이 바로 가해국의 진심어린 사죄이다. 가해국은 스스로 저질렀던 잘못과 그릇된 행동들을 시인하고 반성하는 태도가 필요하며, 독일이 진행했던 프랑크푸르트 아우슈비츠 재판 세계기록유산 등재의 선 사례처럼 가해국의 속죄와 노력으로 서로간의 갈등을 완화해야한다.

하지만 일본은 지금껏 일본군‘위안부’뿐만 아니라 중국 침략과 한국의 식민지 지배에 대한 반성 없이 평화국가임을 자칭하며 눈속임을 해왔고, 여전히 앞길을 막으며 잘못에 대한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다. 현재 일본의 훼방은 우리에겐 일시적인 장애물일 뿐이며 언젠가는 그들이 숨기고자한 모든 사실이 탄로 나게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때문에 국제적으로 그들의 잘못을 알릴 수 있는 일본군‘위안부’ 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가 더욱 절실하다. 해당 기록물은 세계기록유산 등재조건에 모두 부합할 뿐만 아니라 여성인권 가치 신장의 나침반이며, 또 일본의 빈약한 주장에 맞설 수 있는 강력한 힘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에 다음 시도에서만큼은 반드시 성공적인 등재로 이어져야 한다. 이를 통해 일본이 하루빨리 시인과 속죄, 책임을 다하기를 바라며, 전쟁범죄와 여성인권에 대한 인식재고의 물결이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 보편적인 인류의 성장과 발전에 기여하길 바라는 바이다.

 

일본군 ‘위안부’,

기억되어야 하는 우리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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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기억되어야 하는 우리의 역사

민주상

박정현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에 앞서 일본군 ‘위안부’라는 이름하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지니게 된 수많은 분께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 공모전에 제출할 글을 준비하면서 평소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는지, 같은 민족의 후손으로서 ‘나’라는 사람이 이 어긋난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하지 않았는지에 대해 돌아보고 성찰하는 시간을 가지게 됐던 것 같습니다. 이러한 기회를 마련해주신 공모전 주최자 분들,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고 현재 당당히 세상을 향해 용기 있는 목소리를 내어주시고 계시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께 사과의 말씀을 올리고 싶습니다. 조금 더 일찍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지 않아 죄송하고, 앞으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인지하고 바르게 다잡을 수 있도록 노력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일본군 ‘위안부’. 누군가에게는 생소한 이름일 수 있는 그 단어 속에는 차마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수많은 이들의 눈물과 세월이 담겨 있습니다. 세상에 드러난 진실보다 드러나지 않은 진실이 더 많을 지도 모르는 그 역사를 우리는 제대로 마주해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이에 따라 일본군 ‘위안부’와 관련된 기록물들인 “일본군 ‘위안부’의 목소리(Voices of ‘Comfort Women’)”가 유네스코에 등재되기를 촉구하는 바입니다.

 

일본군 ‘위안부’란 일본군의 성욕 해결, 성병 예방, 치안 유지, 강간 방지 등을 위하여 일본군과 일본정부가 중일전쟁 및 아시아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 점령지나 주둔지 등의 위안소에 배치한 여성들을 부르는 말입니다. 이 위안부로 동원되었던 수많은 여성들은 일본군들에게 성적인 착취를 당해야만 했습니다. 주로 전쟁 당시 일본이 점령했던 지역의 여성들이 ‘위안부’로 많이 동원되었으며, 그중 조선의 여성들이 절반 이상을 차지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와 함께 가면 일을 하게 해주겠다.’, ‘우리와 함께 하면 공부를 할 수 있게 해주겠다.’ 등의 말로 피해자들을 데려갔습니다. 그중 대부분이 아직 10대인 소녀들이었습니다.

 

일본이 ‘위안부’를 대상으로 했던 만행은 차마 말로 할 수 없을 만큼 참혹했습니다. 신체적인 고통도 물론 존재했겠지만 아마 가장 컸던 것은 정신적인 고통이 아니었을까 조심스레 생각하는 바입니다. 그들은 ‘위안부’를 대상으로 폭력을 행사하기도 했고, 소녀들을 ‘성적 노예’로 대우했습니다. 이는 ‘위안부’로 동원됐던 모든 여성들의 성적 자기 결정권을 침해하는 행위이며 또한 그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행위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은 이러한 ‘위안부’에 대한 사실을 부인하고 마주하지 않으려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위안부’와 관련된 자료들을 공개하기를 거부하고, ‘위안부’ 피해자 분들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일본군 ‘위안부’ 사건에 정부가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자료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고, 나아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덮으려 하고 있습니다. 이런 터무니없는 이유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외면하는 것은 전혀 바람직하지 못한 태도입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문제는 일본의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사건을 막으려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일본 정부의 권력에 맞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려면 그것과 관련된 자료를 보존하고, 많은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널리 알려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리고 이와 같은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일본군 ‘위안부’의 목소리”가 유네스코 기록 유산에 등재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일본군 ‘위안부’라고 하면 대한민국과 일본, 이 두 나라의 문제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분명히 계실 거라 생각 됩니다. 하지만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비단 우리나라와 일본 양국 간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적인 문제입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 중 절반 이상이 우리 조선의 여성들이라는 건 명백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일본군 ‘위안부’에 동원된 여성들은 조선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일본, 중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에서 동원된 여성들도 있었습니다. 이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대한민국과 일본, 두 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가 관심을 가지고 해결해 나가야 하는 문제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세계인들의 의식은 매우 얕고 해박합니다. 그러나 “일본군 ‘위안부’의 목소리”가 세계 기록 유산에 등재된다면 이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더 많은 사람들이 접하고 알 수 있게 해주는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자료들이 사라지는 것을 막아줄 것이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세월 속으로 묻히는 일도 일어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전 세계에 있는 기록들을 보존하는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인 만큼, “일본군 ‘위안부’의 목소리”가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에 등재된다면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전 세계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더 관심을 가지게 되고, 피해자 분들의 인권 회복을 위해 노력하려 할 것입니다. 많은 나라들이 관련된 사건인 만큼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심각성과 “일본군 ‘위안부’의 목소리”의 가치는 더 널리 알려져야만 합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보면 대부분이 여성입니다. 이 말은 즉,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여성 인권 침해와도 관련이 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앞서 말했듯 일본군 ‘위안부’는 인간이면 누구나 가지게 되는 ‘인권’을 보장받지 못했습니다. 인권이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는 권리로 자유롭게 살 권리, 평등하게 대우 받을 권리 등 다양한 권리들을 포함하는 말입니다. 하지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은 늘 군인들의 감시를 받으며 자유롭게 생활하지 못했고,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도 못했습니다. 이러한 사실들에 근거하여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여성 인권 침해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은 일본의 ‘위안부’ 문제 회피로 인해 그들로부터 인권 침해에 대한 진심 어린 사과 한 마디도 받지 못했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분들은 최초로 증언이 나왔던 1991년 이후 계속해서 목소리를 내어주고 계십니다. 자신들의 침해당한 인권을 위해, 그리고 눈물로 지샌 지난 세월을 위로받기 위해 갖은 고초를 무릅쓰고 당당히 일본과 맞서고 계십니다. 저는 ‘위안부’ 피해자 분들의 진심 어린 목소리와 발자취가 전 세계에 전해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자신이 겪은 일을 당당히 말하고 가해자에게 사과를 요구하는 ‘위안부’ 피해자 분들의 그 숭고하고도 아름다운 용기가 기억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나아가 여성 인권 회복에 영향을 주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그들의 아픈 세월을 기록하고 보존해야 합니다.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또다시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더 이상 피해자 분들이 눈물 흘리지 않도록 우리가 기억해야 합니다. “일본군 ‘위안부’의 목소리”가 모이게 된 이유도, 등재되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명백한 여성 인권 침해의 사례입니다. 이는 “일본군 ‘위안부’의 목소리”가 보존되어야 하는 또 다른 이유입니다.

 

전 세대의 인류가 다음 세대의 인류에게 남겨놓은 기록들을 바탕으로 우리는 어떠한 일을 했을 때에 생겨날 피해와 결과를 예측하고 이를 예방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기록을 바탕으로 우리는 해당 문제에 대한 보완점을 찾고, 더 나은 방식으로 발전해 나갑니다. “일본군 ‘위안부’의 목소리”가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으로 등재된다면, 우리는 이와 같은 아픈 역사가 되풀이 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해결책 또한 발견해 낼 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일본군 ‘위안부’의 목소리”는 우리 인류에게 충분한 교훈과 의미를 전달해줄 수 있는 가치를 지닌 기록입니다. 우리는 이 기록을 통해 좁은 의미에서는 성범죄 피해자들의 고통을, 넓은 의미에서는 여성 인권 침해에 대한 심각성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일본군 ‘위안부’의 목소리”는 단순한 기록물이 아니라 우리에게 어떠한 가치와 교훈을 전해줄 수 있는 명백한 유산입니다.

 

일본군 ‘위안부’는 우리가 잊으면 안 되는 중요한 역사들 중 하나입니다. 우리는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 명확히 인지하고 그것을 해결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비단 대한민국과 일본 양국 간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가 관련된 문제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역사를 기록하고 보존해야 합니다. “일본군 ‘위안부’의 목소리”는 명백한 독자적인 기록이며, 후대에 전해줄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는 소중한 유산들입니다. 이에 따라 유네스코 측에서 “일본군 ‘위안부’의 목소리”가 가지고 있는 가치를 다시 한 번 되새기고 세게 기록 유산으로 등재해주기를 촉구하는 바입니다.

 

참고 자료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여성가족부 일본군 위안부 e역사관, 두산 백과, 유네스코와 유산.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의

가치와 우리의 행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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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기록물의

가치와 우리의 행보

정의상

THE 작은공동체

일본군 ’위안부‘는 한국 사회에 있어 여전히 논쟁거리라 할 수 있다. 역사적 기록물이 명확함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에서조차 일본과의 국제관계를 배제할 수 없다는 의견과 피해자들의 만족과 재발 방지의 보장조치를 확립하고자 하는 의견이 여전히 대립한다. 이러한 현실에서 한국 내에서 먼저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의견을 통일하여서 한 목소리를 내야 하며, 전쟁범죄 피해라는 사실에 힘을 실어야 한다. 또한, 국민 스스로 국제사회에서 위안부 주제에 대한 정당성을 제시할 수 있는 근거를 알고 있어야 한다.

 

2016년 ”일본군 ‘위안부’의 목소리(Voices of Comfort Women)"라는 제목의 2,744건의 기록물을 모아 국제연대위원회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 신청을 했지만, 등재 보류로 남았다. 이런 배경에는 2016년 몇몇 일본 우익 단체에서 일본군 ‘위안부’ 관련한 6건의 자료들을 일본군 ‘위안부’들이 강제동원과 성노예가 아니었다는 내용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 신청한 일이 있었는데, 이는 명백히 유네스코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 등재를 방해할 목적이었다. 결국, 2017년 10월 유네스코 국제자문위원회(IAC)는 이 두 개의 신청서가 갈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세계기록유산 등재 결정을 보류했으며 제삼자의 중재를 통하여 두 신청 당사자 간의 대화가 필요하다고 결정했지만, 규칙에도 없는 대화를 권고했고 2020년 현재, 아직까지 대화는 진행되고 있지 않다.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위안부‘ 피해는 그저 겪지 못한 역사 속의 아픔이지만, 피해자들에게는 삶의 일부이며 그들의 피해 진술은 세계사의 생존 증인으로서 국제사회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우리는 다양한 문화 콘텐츠 및 미디어, 교육교재를 통해 피해 사실과 정도에 대해서 잘 알고 있지만 완벽한 공감과 위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들이 불가피하게 겪은 전쟁 피해를 보상하기 위해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여 역사적 사실로서 인정하고 위안부 피해자들의 진술 진정성을 알리는 것으로 우리는 그들의 삶을 존중해야 한다.

또한 미래세대를 위해 역사가 반복되는 일이 없도록 재발 방지를 위해서라도 공식적인 문서로 기록을 해야 한다. 이러한 피해를 역사적 자료로 문서화하는 것은 전쟁범죄 재발 감소 효과가 있으며, 일본군 ’위안부‘ 역사 문서는 단순 성폭력 피해 증언물이 아닌 전쟁피해 속의 여성 인권 박탈 문제와 인류 비극의 역사로 누구나 기억해야 할 광범위한 전쟁의 비극을 잘 알려주는 기록물이라는 의의가 있다.

이를 배경으로 ”일본군 ‘위안부’의 목소리(Voices of Comfort Women)"가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해야 하는 이유를 1.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의 의미와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의 가치 2. 기록물의 보존과 훼손, 증인 생존의 한계로 정리하였다.

 

  1.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의 의미와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의 가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사업은 1991년 유고 내전 당시로 거슬러 올라가 시작된다. 1991년 유고 내전 당시 많은 도서관과 문서관을 의도적으로 파괴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한 것을 발단으로 유네스코는 전쟁과 사회적 변동에 다른 약탈과 불법 거래, 파괴, 재원 부족으로 인한 부적절한 보존 등 위기에 처한 기록 유산을 인류 모두의 자산이라는 관점으로 세계기록유산 사업을 출발하였다. 1995년 유네스코는 인류 문화를 계승하는 중요한 유산임에도 불구하고 훼손되거나 영원히 사라질 위험이 있는 기록 유산의 보존과 이용을 위해 기록 유산의 목록을 작성하고 효과적인 보존 방안을 마련하였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의 목적은 1) 최적의 기술을 통해 인류의 중요한 기억을 담고 있는 기록 유산의 보존 2) 중요한 기록 유산에 더욱 많은 사람이 접근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줌 3) 인류의 기억을 담은 기록 유산이 존재한다는 것과 그 유산의 의미와 중요성을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하는 것 4) 기록물의 보전뿐만 아니라 기록물이 갖는 세계사적 가치를 국제사회가 공유하는 것이다.

유네스코 선정기준은 1) 유산의 진정성 2) 독창적이고 비대체적인 유산 3) 세계적 관점에서 유산이 가지는 중요성 4) 보조요건으로 나누어진다. 먼저 유산의 진정성으로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은 사실인정에 대한 사죄, 배상, 재발 방지에 있어 목적이 분명하고 일본군 ‘위안부‘ 생존 피해자들의 증언과 증거 사진으로서 유래를 증명할 수 있다. 두 번째, 독창적이고 비대체적인 유산으로서 제2차 세계대전에 조선, 중국, 필리핀, 베트남,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네덜란드 등 동아시아, 동남아시아, 태평양 지대에서 일어난 전쟁피해로 특정 기간 또는 특정 지역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쳤다. 세 번째, 세계적 관점에서 유산이 가지는 중요성으로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이 단순히 역사적 사실을 정확히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가치 있는 것뿐만 아니라 전시 성폭력이라는 범죄가 피해 여성의 육체와 정신과 인생에 대해 갖는 파괴력을 보여주고, 그 점으로 인해 이 같은 전쟁범죄가 근절되어야 함을 인류에게 가르쳐주기 때문에 세대를 이어 알려져야 할 기록물로서의 중요성을 가진다. 네 번째, 보조 요건으로서 최근 일본군 ’위안부‘ 관련 단체에 대한 협박 증가와 피해 당사자가 고령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위협‘의 항목을 충족한다.

이처럼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의 취지와 선정 기준 모두 부합하는 문서라 할 수 있으며 2017년 2월, 유네스코 등재심사소위원회(RSC)에서 “유일하고 대체 불가능한(unique and irreplaceable)” 자료로 평가받은 점을 근거로 들 수 있다.

 

  1. 기록물의 보존과 훼손, 증인 생존의 한계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유엔 인권위원회와 관련 단체의 조사활동, 한국・중국・타이완・필리핀 등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법정투쟁, 일본 교과서에 ‘위안부’서술 등 원활한 활동이 전개되자, 이에 반발한 일본의 우익들 역시 일본 정부의 관여와 책임을 부정하는 역사수정주의와 일본군 ‘위안부’를 부정하는 소리를 높이기 시작하였다(김정현,2020).

세계기록유산의 취지는 소실될 가능성이 있는 문서를 지키고자 하는 것에 있으나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 및 관련 기념물 등은 적절히 보존되고 있지 않다. 대표적인 예시로 2016년부터 현재까지 국내·외 다수의 소녀상 훼손 사례가 주기적으로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국내에서도 ‘나눔의 집’과 연관되어 문서 훼손이 적지 않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지원 시설인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에 대한 경기도 민관합동조사단의 조사 결과, 기록 전문가 단체들이 위안부 피해자 관련 기록 훼손이 심각하다며 대책 마련을 촉구한 사실이 있다. ‘나눔의 집’ 현장 조사를 한 결과에 따르면 피해자 할머니들의 기록은 현재 ‘나눔의 집’ 수장고와 교육관 1·2층 베란다, 생활관 1층 서가, 제1 역사관 창고 등에 흩어져 있다. 또한, 2019년 7월 25일부터 8월 2일까지 증축공사를 한다는 이유로 할머니들의 기록물을 건물 밖 주차장에 방치하기도 했다. 장마가 끝나지 않아 할머니들의 기록은 마대자루 등에 담긴 채 비를 맞아 훼손됐다. 이 과정에서 기록들이 훼손되거나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방치된 기록 중에서는 국가지정기록물도 다수 있다. `나눔의 집`은 기록의 역사적 의미를 망각하고, 이 기록들을 안정적으로 장기 보존할 그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어 여성가족부와 경기도는 기록들을 즉시 보호 조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위와 같은 사례는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은 국내·외에서 훼손 및 소실되었다는 것을 증명하고, 이를 통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의 취지에 부합하여 보존 가치가 있는 기록물로서 등재하고 보호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민간단체가 아닌 국가 차원에서 기관을 등록하여 관리하고 국가지정기록물로서의 보호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2020년 한 해만 해도 네 분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가 돌아가셨고, 이후 이로 인해 한국 정부에 등록된 피해자는 열여섯 분이 남았다. 나머지 분 역시 90세가 넘은 고령으로 점점 증언 확보 및 활동에 어려움이 커지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서 활동 중인 이용수 할머니는 이러한 상황에 대해 “저놈들은 하루빨리 우리들이 세상을 떠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서 우리들 모두가 죽어야 지들의 악행이 다 지워지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요.”라고 언급하였다. 이 밖에도 위안부 등재 권고 올해가 마지막이라는 점에서 기록물 등재가 시급하며, IAC와 유네스코는 이해 당사국 간 역사 인식이 다를 경우 심사를 보류한다는 내년도 제도 개혁안을 앞당겨 적용해 심사를 보류할 것으로 분석된다. 이렇게 장기전으로 이어질수록 피해 생존자의 수도 적어져 기록물 등재의 가능성이 희박해지고, 공식적인 보호를 받지 못해 인류 문화를 계승하는 중요한 유산임에도 소실될 것이다. 이후 국가적으로 피해자에게 공식적인 보상 및 명예 회복이 어렵게 되며 세계사로서의 의미도 퇴색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는 과정에서 청소년으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의사 표현으로는 학교 내 동아리와 같이 국제연대위원회에 힘을 보탤 수 있는 단체를 구성함으로써 학교 내·외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해 활발히 알릴 수 있는 활동을 진행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 생각한다. 이러한 활동들로는 중·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역사 바로 알기 강연이 있고, 서명운동이나 캠페인을 통해 일반인들에게 꾸준히 공론화하여 문제를 상기시키는 것이 있다. 이런 사소한 활동들이 모여서 한국 사회 내에서 일본군 ‘위안부’ 주제가 소멸하지 않도록 유지하는 것에 보탬이 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많은 국민적인 이슈가 되어 국가 차원에서 기록물 등재 및 보존의 조치를 취할 수 있는 발판으로서의 역할을 해낼 수 있다. 또한 인터넷 매체를 활발히 이용하는 세대로서 인터넷 커뮤니티 등의 활동을 통해 한국뿐만 아닌 다른 나라의 일본군 ‘위안부‘ 문제 역시 조명시키고 세계사로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가 존재했다는 것을 국제적으로 알릴 수 있다.

 

이번 활동을 위한 자료조사를 통해 현재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 등재 현황과 국제적인 견제 및 보류 상황에 대해서 자세하게 알게 되었고 현재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에 경각심을 가지게 되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라고 하면 단순히 해결되어야만 하는 문제로만 생각하는 것에서, 세계 기록 유산으로서의 가치와 보상 및 피해자의 명예 회복, 세계사적인 의미로까지 생각의 폭을 넓힐 수 있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문제를 단순히 민간 차원에서 해결하고 있다는 상황에서 국가적인 개입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았고 이 단체 행동과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위해 청소년인 우리가 할 수 있는 행동이 무엇이 있을지 고민해보게 되었다. 이번 공모전의 경험을 통해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의 현실을 알게 된 것처럼 청소년들이 더욱더 활발히 이 문제를 생각해보고 스스로 활동하게끔 다양하고 많은 활동이 개최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참고자료

일본군 ’위안부‘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한 국제학술대회 [일본군 ’위안부‘의 목소리, 그 공명과 확산],국제연대위원회,2016

김정현, 2020, 한중일의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 발굴 성과와 과제 -역사수정주의와 보편적 인권의 길항-. 한일관계사연구, 69(), 185-224.

김정란, 「일본군‘위안부’ 운동에 나타난 민족주의적 경향」, 철학과 현실,2006, 116쪽)

인천일보(http://www.incheonilbo.com)

한 국가(一國)의 관점에서 탈피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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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국가(一國)의 관점에서 탈피하라

자주상

창원용호고등학교 VANK 동아리

목차

Ⅰ. 학교로 스며든 소녀상

  1. 우리 학교에도 소녀상이 있다.
  2. 소녀상을 세운 계기 및 과정

Ⅱ. 학교 구성원이 생각하는 일본군 ‘위안부’와 소녀상의 의미

  1. 학교 구성원의 의견
  2. 소녀상을 관리하는 VANK 동아리 학생의 의견

Ⅲ. 일본군 ‘위안부’가 여성 인권에 대해 시사하는 바

  1. 여성인권과 일본군 ‘위안부’의 관계
  2. 일본군 ’위안부‘가 현대여성인권에게 주는 교훈

Ⅳ. 일본군 ’위안부‘ 유네스코 등재의 당위성

  1. 일본군 ‘위안부’와 제2차 세계대전 기억을 위한 유네스코 문화유산

Ⅴ. 맺음말

. 학교로 스며든 소녀상

  1. 우리 학교에도 소녀상이 있다.

 

우리 학교 중앙에 위치한 구름다리 한 켠에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제국주의 일본으로부터 인권이 유린된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를 기리는 소녀상이 위치하고 있다. 우리는 학교의 소녀상 관리를 매개로 일본군 ‘위안부’의 아픔을 알리고 소녀상의 의미를 학생 구성원에게 적극적으로 공유하는 반크(VANK) 동아리 학생이다. 소녀상의 숨은 의미를 고찰하고, 일본군 ‘위안부’의 아픔과 우리나라 여성인권의 진보를 위해 본고를 작성하였다. 본격적으로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서두에 우리 학교에 소녀상을 건립하고 학생 구성원의 인권의식과 역사의식 향상을 위해 노력한 선배님의 이야기를 담았다.

 

  1. 소녀상을 세운 계기 및 과정

 

여성 인권이 남성과 어느 정도 동등해진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평소 인권과 역사에 관심이 많았기에 역사적 상황에 따른 맥락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여성 인권이 유린된 대표적인 사례로 일본군 ‘위안부’를 알았다. 과거 일본이 무차별적으로 자행했던 사실에 대한 ‘사과’를 받고자 꽤 오랫동안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으나, 양 국가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얽혀 아직도 공식적인 사과를 받지 못하고 있다. 이 사실을 안타깝게 여겨, 학생의 입장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찾아보았다. 그러던 중, 타 학교에서 소녀상 건립을 주도하는 것을 보며 우리 학교에도 세워 일본군 ‘위안부’를 기억해주길 바랐다. 더 나아가, 소녀상을 여성인권과 관련된 매개로 인식하여 여성인권에 관심을 가져달라는 욕심도 분명 있었다. 당시 역사 동아리를 주도하고 있었기에 이와 같은 뜻을 동아리 부원들에게도 전달하였으며 일련의 과정을 거쳐 마침내 함께 소녀상을 건립할 수 있었다.

소녀상을 세우기 위해 여러 과정을 거쳤다. 우선, 학교 구성원의 관심이 필수적이므로 그들의 인식이 궁금했다. 따라서, 일본군 ‘위안부’ 관련 피켓을 제작하여 그들의 관심을 유도했다. 이밖에도, ‘역사인식조사’의 일환으로 교외에서 시민의 관심 또한 조사했으며, 그 과정을 백서에 담았다. 사실, 생각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당시 교장선생님께서는 소녀상의 관리 방안을 강조하시면서 건립을 반대하셨다. 하지만, 동아리 입장과 앞으로의 계획을 전달함으로써 소녀상을 세울 수 있었으며, 그 계획이 지금까지 이어져 지속적인 관리와 관심 아래, 소녀상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 학교 구성원이 생각하는 일본군 위안부와 소녀상의 의미

  1. 학교 구성원의 의견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알리는 반크(VANK) 동아리의 학생으로서 일본군 ‘위안부’를 잊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학생의 입장에서 학교 구성원이 일본군 ‘위안부’와 관련된 문제와 소녀상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에 대한 생각을 공유했으며 자세한 내용은 아래와 같다.

 

Q1. 교내에 소녀상을 세운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A1: 많은 학생구성원은 “평소 많은 학생들이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안타까운 감정과 심각성을 알고는 있지만, 이를 직접적으로 느끼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우리가 생활하는 공간에서 일본군 ‘위안부’ 소녀상을 매일같이 접함으로써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를 잊지 않으며, 아직까지도 제대로 해결되지 못하고 있는 위안부 문제를 우리 뇌리에 상기하고 일본군 ‘위안부’문제에 대해서 다방면적으로 관심을 가질 수 있게 하는 매개체라는 생각이 들었다.” 라고 답하였다.

 

Q2. 일본군 ‘위안부’의 유네스코 등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A2: 학생들은 우리의 질문에 대해 “일본의 잔혹했던 전쟁범죄 중 하나인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유네스코에. 등재된다면, 세계적인 관심이 수반될 것이고, 이는 일본의 진정성 있는 사과를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유네스코에등재되었다는 사실 만으로도 전 세계인이 기억해야 할 가치가 있다는 것이 입증되는 것이기에 등재되어야 한다.”, “유네스코가 추구해야 할 주된 가치는 잘못된 과거를 반성하고, 그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제2차 세계대전의 아픔을 반복하지 말자는 의미에서라도 일본군 ‘위안부’의 유네스코 등재는 필연적이라고 생각한다.” 라고 답하였다.

 

Q3. 일본군 ‘위안부’는 우리나라 여성 인권에 어떤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는가?

A3: 학생들은 질문에 “사실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현대 여성 인권에 밀접한 영향을 미쳤다고는 생각한 적이 없었지만, 피해 할머니들이 용기 내어 자신들의 인권을 유린한 일제에 대해 사과를 요구하는 모습이 진취적으로 느껴졌다. 이러한 모습이 자신의 권리를 쟁취하고자 하는 현대 여성들의 모습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 같다.”, “많은 사람이 일본군 ‘위안부’를 계기로 좁은 범위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여성 인권의 유린을, 넓은 의미에서는 현대에도 일어나는 여성 인권에 대한 무관심과 존중이 부족한 우리 사회의 현실에 관심을 가지게 한 하나의 수단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등의 의견을 말해주었다.

 

  1. 소녀상을 관리하는 VANK 동아리 학생의 의견

 

소녀상을 실질적으로 관리하는 우리 반크(VANK) 동아리 학생들의 의견도 학교 구성원의 의견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여성들이 일본의 제국주의와 침략야욕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전쟁을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써, 하나의 소모품으로 취급되었다는 사실과, 천부적으로 부여된 인권조차 존중받지 못한 채 인권을 유린했다는 점이 상당히 개탄스러웠다. 이런 점에서 다시는 일본군 ‘위안부’와 같은 불행한 일이 반복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유네스코 기록유산 등재는 필수적으로 수반되어야 하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이를 통해 21세기인 현재에 이르기까지도 유리천장 등 여성 인권이 온전히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자각할 수 있었고 일련의 과정에서 일본군 ‘위안부’는 여성 인권과 전쟁이라는 아픔에 대해 우리에게 상당한 교훈을 주는, 또는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하나의 매개체라는 생각이 들었다.” 라는 의견을 동아리 간의 토의를 통해 확립하게 되었다.

 

. 일본군 위안부가 여성 인권에 대해 시사하는 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 ‘위안부’의 존재가 알려지고 많은 사람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아무리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고 할지라도, 인간의 기본적 권리마저 무시한 채 여성에 대한, 인간에 대한 반인륜적 행위를 자행했기 때문이다. 이후 일본군 ‘위안부’와 관련된 문제는 피해 할머니들에게서도 잊혀져 가다, 1991년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을 시발점으로 대두되었다. 이후 이 문제는 수요집회로 대표되는 여성 인권과 피해 할머니를 위한 사과를 요구하는 하나의 ‘움직임과 행동’으로 성장하였다. 하지만 21세기 대한민국에는 여전히 신장시켜야 할 여성 인권문제들이 팽배해 있다고 생각했다. 여성과 남성의 임금 격차, 여성에 대한 폭력, 그리고 가부장적인 사회 분위기 속 여성에 대한 전반적인 기회 단절 등이 그 예이다. 우리는 이런 문제의 근본적 해결책은 무엇인지, 일본군 ‘위안부’와 관련된 문제가 21세기 현재의 우리에게 여성 인권의 향상을 위해 어떤 교훈을 줄 수 있는지 탐구해보았다.

 

  1. 여성 인권과 일본군 위안부의 관계

 

1991년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으로 일본군 ‘위안부’와 관련된 문제가 세상에 대두하였다. 그리고 지금까지 일본군 ‘위안부’와 관련된 문제가 우리에게 알려지는 과정에서 수많은 여성 인권 단체의 노력이 수반되었다. 사실 광복 이후 40여년 동안 일본군 ‘위안부’가 알려지지 않은 이유에는 정치 및 문화적으로 다양하다. 예컨대, 1965년 체결된 ‘한일협정’ 영향으로 구상권 청구가 어려웠던 역사적 맥락, 가부장적 사회, 일본군 ‘위안부’로 동원된 사실에 대한 함구 등이 있다. 수많은 걸림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여성인권단체가 일본군 ‘위안부’의 실태를 알리기 위해 노력하였으며, 덕분에 문제의 중요성이 사회적으로 자각되기 시작하였다. 이후 많은 여성단체가 여성인권의 유린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했고, 이를 기억하고자, 다시는 이런 아픈 역사가, 끔찍한 사건이 되풀이 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의미 있는 여러 활동을 진행하였다.

이러한 여성단체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이 설립되었으며, 일본의 전쟁범죄를 고발하고 피해 할머니의 명예회복과 역사교육의 장으로서 활용되고 있다. 이외에도 각종 사이버 역사관을 만들어 일본군 ‘위안부’와 관련된 정보가 전 세계적으로 알려져 초 국가적 연대로 발돋움 하는 시발점이 되었다. 영화, 다큐멘터리와 같은 다양한 미디어와, 작은 소녀상을 건립하는 등 여성인권단체의 노력으로 국민이 주체가 되어 일본군 ‘위안부’문제를 탐구하였다. 이는 국가적 차원의 연대 속에서 행동하는 점에서 여성인권단체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연대는 큰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더욱 고무적인 측면은, 여성단체의 노력이 일본군 ‘위안부’와 관련된 문제에 대한 고찰에서 국한된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여성인권에 대해 전반적으로 고민하게 해주는 매개체가 되었다.

덧붙여 이들의 활동이 주체가 되어 한⦁일간 민족적 문제로 국한될 수 있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전시여성인권‘ 문제라는 좀 더 구체적이고 보편적 사례로 확산시켰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지속적으로 이어져 UN을 비롯한 국제기구에서 위안부 문제의 중요성이 대두되었으며, 일본의 처사가 부당함을 알리는 데 일조하였다. 즉 국내 여성인권단체의 노력이 세계적인 동의를 바탕으로 관심을 얻어냈다는 점에서 여성단체는 좁은 측면에선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피해에 대한 공감과 명예회복을, 넓은 측면에서는 우리사회 여성인권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주었다.

 

  1. 일본군 위안부가 현대여성인권에게 주는 교훈

 

우리나라는 과거부터 유교적 사회 분위기로 인해 여성은 비주류로 분류되었다. 물론 21세기인 현재 일본군 ’위안부‘와 같은 물리적인 측면에서의 여성인권에 대한 유린과 핍박은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여성을 향한 차별은 상당 수 잔존하고 있다. ’유리천장‘, ’남녀임금격차‘, ’성폭력‘등을 예시로 들 수 있다. 이렇듯 현대에도 잔존하는 여성을 향한 차별에 일본군 ’위안부‘와 관련된 문제는 하나의 교훈을 준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불합리한 상황을 받아들이고 낙담하기보다, 진취적인 자세로 자신의 삶을 능동적, 긍정적으로 살아가기 위해 연대하라고 말이다. 동아리 또한 위 문항을 작성하면서 상당히 많은 고민을 했다. 그 결과 짧은 결론을 도출할 수 있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가 자신의 당연한 권리를 주장하고 핍박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듯, 자신이 평소 여성으로서,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권리‘를 당연하게 생각하라고 말이다.

 

. 일본군 위안부유네스코 등재의 당위성

 

여러 차례에 걸쳐 일본군 ‘위안부’가 유네스코 등재를 다음과 같은 이유로 추진하였다. 첫째,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으로부터 자행된 전쟁범죄를 세상에 알리고, 피해자들의 아픔에 공감하기 위함이다. 둘째. 인권의 중요성이 대두된 현대사회에서 일본군 ‘위안부’와 같은 일이 반복되면 안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러 문제로 인해 현재까지도 등재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일본군 ‘위안부’의 여러 측면에서 탐구한 끝에 유네스코 등재의 당위성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일본군 ‘위안부’는 우리에게 여성인권의 중요성과 전쟁의 참혹성을 직접적으로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유에서 전 세계인이 기억해야 할 일본군 ‘위안부’의 등재가 무산되는지,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의 반성 아래 유네스코에 등재되었거나 등재가 추진되고 있는 것들은 과연 당위성이 충족되었는지 탐구하였다.

 

  1. 일본군 위안부와 제2차 세계대전 기억을 위한 유네스코 문화유산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군함도나 만주 731부대(마루타)와 같은 역사적으로 반복되면 안되는 사건을 왜곡하여 이미 유네스코에 등재했거나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 그에 비하여 전 세계인에게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전쟁의 참혹성을 알려주며, 반복되어선 안되는 반 인륜적 전쟁범죄이자 인권유린인 일본군 ‘위안부’와 관련된 문제는 유네스코 등재의 충분한 당위성을 가지고 있으나, 일본의 극심한 반대로 등재가 보류 및 결렬되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와 관련된 문제는 4번 문항에서 서술한 것과 마찬가지로 전 세계인이 기본적으로 기억하고, 그를 바탕으로 다시는 반복되어서는 안 될 전쟁범죄이다. 이 사실만으로도 유네스코 ‘기록유산’ 등재의 당위성이 충분하다. 사실 동양에서는 일본군 ‘위안부’가 있다면 유럽에서는 유대인을 향한 끔칙한 ‘홀로코스트’가 있다. 하지만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자신들의 잘못을 스스로 자각하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국가가 조직적으로 시행한 범죄들에 대해 사과하는 정책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그 산물 중 대표적 예시가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이다. 자신들의 만행을 역사적으로 기억하여 반복하지 않겠다는 일종의 다짐을 유네스코 등재와 더불어서 보여준 것이다. 이에 그치지 않고 독일의 경우 내부적으로는 초⦁중⦁고 모든 교육기간에서 역사교육을 반복하며, 나치시대 자신들의 만행에 중점을 두고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교과서 검증과정에서도 나치정권의 피해국에게 검증을 받는 등 일관적 자세를 취하고 있다. 홀로코스트 기념관을 세우고 위령비를 세우는 등의 행위를 통해서도 말이다. 하지만 일본은 제국주의 시절 자신들의 만행을 스스로 자각하지 못했다. 심지어 현재까지도 전 세계적 피해자들의 증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군 ‘위안부’는 실존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면서 말이다. 이러한 일본의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고 아픈 역사에 대한 사과를 이끌어 내기 위해 유네스코 기록유산 등재는 필수적이다.

유네스코는 일본군 ‘위안부’와 관련된 문제와같이 우리가 기억해야 할 정작 중요한 역사적 사건과 사실은 제쳐두고, 군함도처럼 등재의 가치는 충족하였으나, 등재의 본질적 초점이 흐려지는 유산에 대해서는 등재과정이나 등재사실에 호의적인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이런 부당한 상황이 계속해서 발생하는 것을 보며 유네스코가 정치적인 도구로 이용되고 있다는 생각에 안타까웠다. 만약 유네스코가 전 세계적으로 ‘기록’이라는 인류 공통의 자산에 대해 중요성을 조금이라도 인식하기 위한 노력을 거친다면, 그 이전에 국제적으로 ‘유네스코‘라는 기관의 신빙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일본군 ’위안부‘의 유네스코 기록유산 등재에 적극적이고 중립적인 자세를 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맺음말

 

역사를 사랑하는 학생으로서 일본군 ’위안부‘와 관련된 문제가 다시는 반복되면 안된다는 소리는 너무나도 많이 들어 상투적인 표현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본 글을 작성하면서, 과연 ’일본군 ’위안부‘피해 할머니들의 아픔과 고통에 진정으로 공감하고 관심을 가졌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반성할 수 있었다. 동아리 학생도 ‘아픈 역사 또한 역사로 받아들여, 반성하는 과정에서 다시는 그와 같은 실수를 하지 않도록 교훈을 주는 것이 역사인데, 역사라는 의미의 본질을 잊고 있진 않았나’라며 반성하는 시간을 가졌다. 2020년 현재 일본군 ’위안부‘의 실태를 고발한 산 증인인 피해 할머니 분들이 고령의 나이로 돌아가시고 있는 현실 속에도, 일본군 ’위안부‘와 관련된 문제의 유네스코 기록유산 등재가 번번이 실패하고 있다. 학생으로서 우리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피해 할머니의 고통에 공감하며, 일본군 ’위안부‘가 유네스코 기록유산에 등재되는 그 시간까지 관심을 잃지 않고,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탐구하는 자세를 가지자고 다짐하였다. 마지막으로 일본군 ’위안부‘의 아픔을 학교 구성원에게 알리는 의무를 지닌 반크(VANK) 동아리의 학생으로서, 우리의 노력이 학교 구성원들의 관심을 유도한다면, 그것이 모이고 모여 일본군 ’위안부‘의 유네스코 기록유산 등재를 이뤄낼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소망을 담아두며, 글을 마친다.

 

 

<참고문헌>

 

창원용호고등학교 VANK, 「창원용호고등학교 ‘작은 소녀상’ 건립 백서」, 2017

도미례, 「국제정치에서 세계여론의 영향력에 관한 연구」, 영남대학교, 2017강정숙, 「일본군 ‘위안부’제의 식민성 연구」, 성균관대학교, 2010

최범, 『한국 디자인과 문화의 전환』, 안그라픽스, 2019

김지혜, 『선량한 차별주의자』, 창비,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