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우스트 Fausta Gome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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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아라얏에서 태어남, 1943년 12세에 한달간 동원됨

마을 사람들이 내가 성폭행 당한 것을

알기 때문에 나를 좋아하지 않았어요.

결혼도 다른 곳의 남자와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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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어머니를 도와 바나나 잎을 시장에 팔기 위해 평소처럼 일을 하고 있었어요. 오후에 일본군이 와서 나를 강제적으로 트럭에 태웠어요. 그 안에는 3명의 여자와 많은 일본군이 있었어요.

나는 군부대로 사용되는 Arayat central school로 끌려갔고, 여자들은 각각 다른 방에 가두어졌어요. 다른 여자들은 볼 수 없었지만, 울음 소리는 들을 수 있었어요.

저녁에 돼서 일본군 2명이 들어와서 나를 구타하며 옷을 벗겼어요. 나는 울며 그만하라고 저항했어요. 고통스러웠어요.

다음날에는 군인이 오지 않았어요. 이후 나를 성폭행한 군인이 밤마다 왔지만, 학대하지는 않았어요.한 두달 군부대 있으면서, 그 군인에게 계속 집에 보내 달라고 항의했어요. 나를 불쌍히 여겼는지 집으로 가라고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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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오니 집은 불 태워져 없어졌고, 어머니는 이웃집에서 열이 나서 아파 누워 있었어요. 몇 달 동안 나는 충격에 빠졌어요. 마을 사람들이 내가 성폭행 당한 것을 알기 때문에 나를 좋아하지 않았어요. 결혼도 다른 곳의 남자와 했어요.

나를 이렇게 만든 일본군이 잔인한 행위를 반성하기를 바라요. 나는 죽기 전에 정의가 세워지기를 바라요. 그리고 공식적인 보상을 원해요. 

* 얘기를 나누는 중간에 할아버지 한 분이 뒤에서 계속 지켜보신다. 나중에 누구냐고 물었더니 남편 분이라고 해서 놀랐다. 아픔을 가족이 함께 나누고 푼다는 것에 감동을 받았다. 

루시아 Lucia Lur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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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아라얏에서 태어남, 1942년 12세에 2개월간 동원됨

텔레비전에서 일본말이 들릴 때는 악몽에 빠져요.

성폭행, 정서적, 신체적 손해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어요.

일본 정부는 전쟁 중에 일어난 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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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빨래한 옷을 널고 있었는데, 일본군 3 명이 와서 양쪽 팔을 잡았어요. 일본말로 소리를 질렀기 때문에 알아 들을 수 없어 나는 두려웠어요.

강제적으로 끌려서 Arayat central school로 갔어요. 나는 방안에 혼자 갇혔어요. 좀 있다가 언니 Maria도 잡혀 왔어요. 방에 2명의 군인이 들어왔고,

나는 방안에서 군인을 피해 이리 저리 피했지만 잡혀서 맞았어요. 첫 번째 군인이 나를 성폭행할 때 심하게 피를 흘렸고 고통스러웠어요. 다음 군인이 할 때는 의식을 잃었어요.

깨어나니까 옷이 피에 젖어 있었어요. 동생 Valeriana도 잡혀와 한방에 있었는데, 같은 고통을 겪은 것처럼 보였어요. 다음 날에도 군인이 왔어요.

나의 몸은 아직 부어 있었어요. 군인은 상관하지 않았어요. 낮에는 청소를 하고, 밤에는 일주일에 3-4번씩 성폭행을 당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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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할 때 남편에게 이야기 했어요. 그는 나의 모든 것을 받아들였어요.

가끔 텔레비전에서 일본말이 들릴 때는 악몽에 빠져요. 성폭행, 정서적, 신체적 손해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어요. 일본 정부는 전쟁 중에 일어난 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해요.

* 어두운 계단 반 층을 오른 할머니의 방 한쪽에는 기도를 하기 위한 십자가와 예수상이 있다. 큰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을 받으며 기도하는 할머니의 모습이 아름다웠지만, 가슴이 메어져 왔다.

페덴시아 Fedencia Nacar Dav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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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루손에서 태어남, 1942년 14세(추정)에 10일, 한달간 두번 동원됨

수시로 3-5명의 군인이 집으로 찾아와 나를 성폭행하고,

먹을 것을 빼앗아 갔어요.

아버지는 숨으러 갔었고,

나 혼자 집에 있었기 때문에 희망이 없는 상황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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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와 같이 마을 시장에 갔을 때, 일본군 2명에게 맞아서 쓰러졌고, 뒤쪽으로 손을 묶였어요. 저항하자 칼로 내 귀를 잘랐어요.

그리고 나를 잡아 갔어요. 관청의 방으로 끌려 갔는데, 일본군이 들어와 나를 안으려 했어요. 군인은 소리를 지르는 내 입을 막고 성폭행을 했어요. 그 뒤로도 군인들에게 당했어요. 다른 여자 10명 정도 있었어요.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군인들이 계속 찾아왔어요. 10일 정도 지나자 군인은 나더러 집으로 가라고 했어요. 우리를 게릴라 스파이로 알고, 미행을 하기 위해 일부로 풀어준 거예요. 다음날 집에 도착했을 때,

일본군은 무작정 총으로 할머니를 쏴 죽였어요. 그 와중에 일본군 2명은 나를 성폭행했어요. 정신을 잃었고 한참 뒤에 일어나 집으로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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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에도 수시로 3-5명의 군인이 집으로 찾아와 나를 성폭행하고, 먹을 것을 빼앗아 갔어요. 아버지는 숨으러 갔었고, 나 혼자 집에 있었기 때문에 희망이 없는 상황이었어요.

한달이 지나서야 일본군은 더 이상 오지 않았어요. 정신적 외상으로 기억 상실증에 걸린 적도 있어요. 그때는 말도 하지 못했어요.

* 할머니는 살림에 보태기 위해 조각난 천을 구해다가, 한 손에 쥐기 좋은 크기로 미싱으로 박아 걸레를 만들어 판다. 하나에 1페소(30원 )불과하지만, 쉬는 것보다 낫다며 소일거리를 계속 찾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