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은 어떠한 곳을 위안소로 사용했을까?
일본군 위안소는 1931년에 상하이(上海)에서 처음으로 설치되어, 패전까지 계속되었다. 일본군이 위안소를 설치한 이유로서 강간방지, 성병예방, 치안유지, 사기고양을 지적할 수 있다. 위안소는 일본군이 침공한 모든 곳에 설치되어, 전쟁지역뿐만 아니라 일본국내 탄갱이나 공장 등 전쟁수행을 위한 노동력이 모이는 곳에 설치되었다는 것이 확인된다.
피해자는 5만 ~ 20만 명으로 추측되지만 자료 등의 부족으로 인해 정확한 숫자는 알 수 없다. 피해자의 출신지역은 조선, 대만, 중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동티모르, 네덜란드, 일본 등 광범위하다. 군인의 기록 등으로 버마, 말레, 인도, 베트남 여성도 위안소에 있던 것을 알 수 있지만 피해 전모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일본군 위안소는 1931년에 상하이(上海)에서 처음으로 설치되어, 패전까지 계속되었다. 일본군이 위안소를 설치한 이유로서 강간방지, 성병예방, 치안유지, 사기고양을 지적할 수 있다. 위안소는 일본군이 침공한 모든 곳에 설치되어, 전쟁지역뿐만 아니라 일본국내 탄갱이나 공장 등 전쟁수행을 위한 노동력이 모이는 곳에 설치되었다는 것이 확인된다.
피해자는 5만 ~ 20만 명으로 추측되지만 자료 등의 부족으로 인해 정확한 숫자는 알 수 없다. 피해자의 출신지역은 조선, 대만, 중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동티모르, 네덜란드, 일본 등 광범위하다. 군인의 기록 등으로 버마, 말레, 인도, 베트남 여성도 위안소에 있던 것을 알 수 있지만 피해 전모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동닝 위안소 터 지금은 새로운 건물이 들어섰지만, 김순옥 피해자는 자신이 있었던 동닝시내의 위안소 자리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피해자는 북한 출신이지만, 2005년도에 한국으로 귀국했다.
스먼즈 위안소 중국 흑룡강성 동닝에는 일본군 수 개의 사단과 지하 요새가 곳곳에 있었다. 당연히 군부대가 있는 곳이면 위안소가 설치되었고, 이수단과 김순옥 피해자는 같은 시기에 스먼즈 위안소에 있었다.
춘화 위안소 중국 지린성 춘화는 큰길을 사이에 두고 한쪽에는 군부대, 반대편에는 위안소 같은 부대 시설이 있었다. 조선, 일본 여성이 있던 위안소 3개가 있었고, 그곳에서 3개월간 성노예였던 박서운 피해자가 평생을 위안소 터와 5분 거리에 살았다.
리지샹 위안소 1937년 중국 난징에서의 중일 전쟁을 시작으로 무차별적으로 일본군에 의해 여성들은 강간을 당하였다. 일본군은 사병의 성병 방지를 위해 난징에 대규모 위안소 40여개를 만들었다. 리지샹 위안소는 4개의 건물에 상시 200여 명의 조선인 여성이 있었다. 흑백 사진 속, 임신한 박영심 피해자가 이곳에 있었다. 
하이나이쟈 위안소 중국 상하이 ‘하이나이쟈(바다의 집)’ 위안소는 일본 장교 출신이 운영한 곳이다. 당시 방직공장을 강제로 빼앗아 위안소 만들고, 주인은 해군으로부터 필요한 음식재료, 술, 콘돔 등을 공급받았다. 흑백 사진은 그곳에 있던 조선인 여성과 일본 장교들이 함께 소풍을 가서 찍었다. 
리푸 위안소 중국 광시성 리푸현의 위안소는 일본군이 마을 지주의 집을 빼앗아 부대시설로 사용했다. 웨이샤오란 피해자가 이곳 1층 끝방에서 성노예를 당했고 아들 루오산슈에을 임신한지도 모른 채 도망을 쳤다.
칭마이 위안소 중국 하이난은 태평양 연안 국가들을 침략하기 위한 중요한 거점이었다. 당연히 일본군이 곳곳에 많았고, 칭마이 시골 작은 마을에도 위안소가 설치되었고 지금도 남아 있다. 중국 여성들이 강제 동원되었다.
고 박래순의 묘 중국 하이난에 바오팅 이족 자치구에는 성노예를 지내다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박래순 피해자의 묘가 있다. 젊은 시절 도로공사 같은 곳에서 일을 했기 때문에 그곳에서 매년 묘를 관리하고 있다. 산야에는 강제징용자의 유골이 있는 천인갱이 있다. 
임마누엘 병원 필리핀 로하스 시의 임마누엘 병원을 일본군은 수비대와 포로수용소, 위안소로 사용하였다. 남자, 여자 따로 구분해 수용했으며, 여성들은 성노예를 당했다. 시내에도 위안소로 사용하던 스페인식 폐 건물이 남아있다. 
필리핀 일본 대사관필리핀 마닐라에서는 매년 두 번 일본, 미국 대사관 앞에서 피해자의 정의와 반전을 집회를 하고 있다. 최근 일본대사관에서 3Km 떨어진 마닐라 로하스 대로에 세워진 위안부 동상이 일본의 압박으로 몰래 철거되었다. 
아라얏중앙학교 필리핀 아라얏 지역에서는 일본군이 중앙학교 건물을 빼앗아 부대로 사용하며 인근 여성들을 납치해 성폭력을 일삼았다. 아직도 이곳에서 피해를 입은 여성들이 생존해 있다.
수카부미 위안소인도네시아 수카부미에는 ‘Keep Rest’이름의 위안소 건물이 남아있다. 당시 현지 여성 3-40여 명이 있는 큰 규모였다. 근처에도 같은 규모의 위안소가 있었다고 한다. 사진속 우미꿀숨 피해자는 두 명의 일본군인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파레파레 위안소 인도네시아 술라웨시 파레파레, 이 집은 당시 일본군이 회의를 하고, 유락을 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바로 옆에는 찐따 피해자가 성노예로 지냈던 위안소 자리가 있다.
위안소 터 더운 지방인 인도네시아 변방에서는 위안소를 대나무로 만들었고, 대나무라는 의미로 ‘바락’이라고 부른다. 대부분의 위안소 건물들이 남아 있지 않지만, 마을 사람들은 그 장소를 기억하고 있다.
술라웨시 피해자들인도네시아 남 술라웨시의 피해 여성들, 1942년 일본군이 침략을 하면서 어린 여성들을 강제로 동원해 성노예로 삼았다. 인도네시아에는 아직도 수천 명의 생존자가 있다고 한다. 전수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남아 있는 기록은 거의 없다. 시간, 통역, 비용 문제 등으로 사진 속에 생존자 중 절반 밖에 못 만났다.
라우린다 문신라우린다 피해자의 팔뚝에는 일본군이 새겨넣은 문신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일본군이 부르던 일본 이름 ‘鶴多子(따스코)’ 와 JAPON…의 글씨가 있다.
프란체시카 문신 프란체시카 피해자는 일본군이 먼저 문신을 새기자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문신을 새겨 넣었다. 군부대 표식으로 보이는 문양이 팔 다리 온몸에 새겨져 있다.
부서진 교회건물 동티모르 사메에 있는 교회가 일본군의 폭격으로 지붕이 없어졌다. 평일이라 인명 피해는 적었다고 한다. 주변 마을에는 3명의 일본군 성노예 피해 여성이 생존해 있다.